호남 5대의 명산 중 하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1971년 우리나라 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80.708k㎡이다. 신선봉(763m)을 주봉으로 하는 내장산은 봉우리들의 높이가 700m 내외지만 봉우리 정상이 저마다 독특한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로부터‘호남의 금강’이라 불렸다. 내장산은 원래 본사인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靈隱山)으로 불리다가 산 안에 감춰진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여 안 내(內), 감출 장(藏) 자의 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내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37년(636)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50여동의 대가람(大伽藍)을 세우고 영은사(靈隱寺)라 부른 이래 조선(朝鮮) 중종 34년(1539)에 내장산에서 승도탁란 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났다. “승도탁란사건”은 승과를 없애는 등 억불정책을 펼쳤던 중종이 승려들을 환속시켜 군적에 넣도록 한 것에 대한 호남지역 승려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한 사건으로 중종은 크게 분노하여 내장사와 영은사를 도적의 도굴이라 칭하며 사찰(寺刹) 철폐령(撤廢令)으로 소각되었다.
그뒤 1567년(명종 22)에 희묵대사(希黙大師)이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절의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는데, 이곳이 현재의 내장사 전신이다. 1779년(정조3)에 영담대사(映曇大師)가 대웅전을 중수(重修)하는 등 여러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하였다.
근세(近世)에는 백학명선사(白鶴鳴禪師)가 절을 크게 중흥(中興)시켰으며 어느때 부터인가 영은사(靈隱寺)를 내장사(內藏寺)로 부르게 되었다.
한국전쟁때인 1951년 1월12일 불탄 것을 1958년 주지(住持)인 다천(茶泉)스님 이 대웅전을 중건(重建)하고 1971년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사찰복원(寺刹復元)사업이 이루어져 오늘날 내장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진신사리 탑(眞身舍利 塔)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590)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3층 석탑으로 1997년 주지 범여스님이 조성하였다. 1932년 영국의 고고학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인도의 고승 지나라타나 스님의 주선으로 내장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사리란 산스크리트어 sarita의 음역으로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수행이 깊은 큰스님 유골에서 추려낸 구슬 모양의 작은 결정체를 가리킨다. 불자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영골(영골)을 일컫는 말이다. 사리를 숭배하고 공경하는 사리신앙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는데, 부처의 진신사리응 보는 것은 부처를 친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 들이고 있어 불탑숭배도 사리숭배와 같은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사리는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福田)이라고 한다._출처 :내장사
정혜루(定慧樓)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590)
정혜루는 내장사의 문루로 사세가 한창 번창할 때인 1468년(세조13)에 세워졌는데, 성임(成任 1421∼1484)의 정혜루기에는 이렇게 전한다.
누의 처마와 기둥은 날아갈 듯하고 창과 난간은 성글어 시원하여 그 규모가 장엄하고 아름다움이 견줄데 없으니 그 이름을 “정혜(定慧)”라 하였다. 불경에 이르기를 비리(非理)를 막고 악을 그치게하는 것은 계(戒)라 하고, 샐각을 편히하고 연(緣)을 고요히하는 것은 정(定)이라 하며, 미혹(迷惑)을 깨고 진(眞)을 보는 것을 혜(慧)라 하였다. 이 누에 오르는 자는 아마 생각함이 있을 것이다. 만일 계(戒)를 인연하여 정(定)을 내어 번뇌(煩惱)를 해탈케하고, 정(定)을 인연하여 혜(慧)를 내어 정신을 소통하고 생각을 통달하게 한다면 곧 보고 듣는 것이 청정(淸淨)하지 않은 것이 없고, 행하고 그치는 바가 낙토(樂土)아님이 없을 것이다. 고을(井邑)은 이 산이 있어 더욱 유명하고 이 산은 절을 얻어 더욱 아름다우며 절은 누각을 얻어 더욱 드러나고 누각은 “정혜(定慧)”라는 이름을 얻어 더욱 빛나리니, 이로 인해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더욱 노닐고자 하는 곳으로 유명할 것이다. 현재의 정혜루는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2층 누각으로 1978년에 복원하였다._출처 : 내장사
화재 발생전 대웅전 모습
1921. 3. 05.일 18시 30분께 예비 승려 A씨(54)가 대웅전에 방화로 인하여 불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현재 불탄 대웅전 자리에는 가건물을 짓어 큰법당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590)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의에 죽음의 세계인 명계(冥界)를 다스리는 시왕(十王)을 모셔 놓은 전각으로 전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이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모시고 있으며, 시왕상 10체가 모셔져 있다. 시왕(十王)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업을 재판한다고 하는 열명의 왕(王)으로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이다. 특히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부터 미력불이 출현 할때까지 천상과 지옥을 두루 살펴서 중생을 교화시킬 것을 부촉받은 보살로 한번 우러러 예경함으로써 만 가지 죄업을 사할수 있는 영험한 보살이다._출처 : 내장사
관음전(觀音殿)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590)
큰 자비의 어머니이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전각으로 전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장사 관음전에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은 불교의 여러 보살들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하며 이 세상 모든 중생의 소망을 담은 간절한 소리를 듣고서 자비를 배풀어 주시는 자비의 화신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하고 그 능력은 어디로든 통하고 두루 미치지 못하는 바가 없으므로 원통대사(圓通大士)라고도 한다. 삼재팔난으로 시달리는 뭇 중생들을 구원하여 지혜와 복덕을 내리고자 천수천안으로 두루 보살피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千手千眼觀自在菩薩)이다. 관세음보살의 공덕은 영험하고 무량하여 중생이 고난 중에 일념으로 그 이름을 외면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받는다고 한다. _출처 : 내장사
내장사 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590)
청동으로 만든 이 종은 내장사를 다시 세우면서 전라남도 보림사에서 옮겨왔다. 높이 80cm, 종 몸체길이 60cm, 구경 50cm의 소형 종이지만, 조선후기 범종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종 몸체의 제일 윗 부분과 맨 아래 부분에는 덩굴무늬 등이 배열되어 있다. 종의 몸체 상부에는 인도의 옛 글자를 양각하고 이중으로 톄를 두른 24개의 둥근 원이 있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 무늬와 서 있는 보살상 그리고 이 종에 관련된 기록 등이 양각되어 있다. _출처 : 내장사
극락전(極樂殿)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590)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으로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하며,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1964년 세웠다. 아미타불은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죄업의 고통으로 절망하는 나약한 중생의 의지처가 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부처님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하며 극락정토로 이끄시는 분이다. 한량없는 생명의 부처님(無量壽佛)이시고 한량없는 빛의 부처님(無量光佛)으로 아미타불게 합장하고 진실하게 염원하면 누구든 소원 성취하고 극락왕생하게 될 것이다. 아미타불의 법성신(法性身)은 그 양이 허공과 같아서 걸림이 없으시며, 법성(法性)에 근거하여 존대(尊大)함과 특수(特殊)함을 드려내시니 극락세계에서 움직이지 않고서도 사바세계에 두루 하신다고 한다. _출처 : 내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