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사(鷰尾寺)
경상북도 안동시 제비원로 672(이천동)
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문화의 고향인 안동은 예로부터 유교적인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왔다. 그러나 안동은 이전부터 불교문화가 꽃피웠던 곳이기도하다. 연미사는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燕口寺)라 한 것이 시초이다.그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숫하여 연자루(燕子樓)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鷰尾寺), 법당이 제부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구사라 불렸다._출처 : 대한민구석구석
안동 이천동 삼층석탑
(安東 泥川洞 三層石塔)
유형문화재 제99호
경상북도 안동시 제비원로 672(이천동)
이 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5m이다. 보물 제115호인 안동 이천동석불상(일명 제비원 석불) 뒤쪽 산위 암벽에 단층기단으로 쌓여진 삼층석탑이다. 원래 석불상 뒤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서 복원하였는데 기단부와 탑신부의 구성비례가 맞지 않고 부조화 스러워서 각 부재 중에서 원재가 아닌 다른 부재가 섞여 있지 않나 추정된다. 그러나 초층 몸돌 이상은 조법, 결구가 명확하고 완전한 상태이다. 하층 기단부가 생략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이고, 2층과 3층 몸돌은 초층의 거의 3분의 1의 높이로 급격히 얕아졌다. 3층 모두 모서리 기둥(隅柱)이 조각되어 있으나 희미하고 상륜부(相輪部)는 완전히 없어졌다. _출처 : 연미사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安東 泥川洞 磨崖如來立像)
보물 제115호
경상북도 안동시 제비원로 672(이천동)
거대한 화강암 석벽에 조각된 불신(佛身) 위에 불두(佛頭)를 따로 제작하여 올린 특이한 형태의 마애불로 머리 뒷부분이 일부 손상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풍만한 얼굴, 큼직한 백호(白毫), 초생달 모양의 깊게 파인 눈썹, 날카롭게 우뚝 솟은 코, 붉게 채색된 도톰하게 다문 입술 등은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손의 모양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취하고 있으며, 불상의 발 밑에는 큼직한 단판 연꽃무늬를 새겨 불상 받침으로 삼고 있다. 이 불상과 같은 형식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는 것으로,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인 조각양식을 볼 때 11세기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다. 전체 높이는 12.39m이다.
제비원은 성주풀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또한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나그네들이 머물던 객사 제비원에서 일찍이 부모를 여윈 연(燕)이라는 처녀는 미모가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마음도 착해서 지나는 길손들을 정성것 보살펴 주며, 늦게까지 일하고도 틈을 내어 글을 읽고 염불수행을 열심히 했다. 이러한 연이의 미모와 착한 마음에 끌여서 사모하는 많은 총각들 중에 이웃마을에 욕심 많고 인색한 김부자의 아들도 연이를 사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어 저승으로 갔는데, 연이가 착한 일을 많이하여 저승 창고에 많이 쌓여있는 재물을 빌여서 저승에서 인정을 쓰고 세상으로 환생하였다. 총각은 연이에게 저승에서 겪은 일을 전하며 재물로 갚으니, 연이는 갑작스럽게 생긴 재산을 사찰불사에 후원했다. 법당이 완공될 무렵 기와를 덮은 와공이 떨어졌는데 그 혼이 제비가 되어 날아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연비사(燕飛寺), 연미사라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명(明)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칼을 빼어 불상의 목을 쳤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