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禪雲寺)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전북 고창군 심원면과 아산면 경계에 해발 336m의 선운산(禪雲山)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날, 미륵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감동하여 절을 세웠다는 설과, 2년 늦은 55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또는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들에는 진흥왕이 창건하고 검단 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354년(공민왕3)에 효정(孝正)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重修)하였다. 1472년(성종3)부터 10여 년에 동안 행호극유(幸浩克乳)스님이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郡)의 후원으로 크게 중창하여 경내이 건물이 189채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宣祖) 3년(1597) 정유재란 때 거의 타버렸는데, 1613년(광해군 5) 태수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스님, 원준(元俊)스님과 함께 재건하여 1619년 완공하였으며, 그뒤 근대까지 여러차례 중수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보물 제290호), 영산전, 명부전, 만세루(보물 제2065호), 산신각, 천왕문, 대방, 요사등이 있다. 절에 전하는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동불암마애불상(보물제1200호), 영상전목조삼존불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범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과 중종과 부도 및 탑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2호)가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이밖에 다수의 조상과 사적비가 남아있다._출처 : 선운사
선운사 만세루(禪雲寺萬歲樓)
보물 제2065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선운사에 전해지고 있는 “대양루 열기(1686년)”, “만세루중수기(1760년)”에 따르면 1620년(광해군 12)에 대양루로 지었다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52년(영조 28)에 다시 지은 건물로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공익계 단층건물이며, 맞배지붕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 만세루는 조선후기 불교사원 누각건물이 시대적 흐름과 기능에 맞추어 그 구조를 적절하게 변용한 뛰어난 사례인 동시에 구조적으로는 자재 획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창성 가득한 건물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국가지정 문화재(보물)로써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선운사 범종(禪雲寺 梵鐘)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이 범종의 높이는 129cm이다. 종신(鐘身) 4곳에는 연화당 화문이 띠를 두르고 있고, 유곽 안에는 9개의 연꽃이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과 범자(梵字)를 새겼다.
몸체의 가운데 부분에 명문(名文)이 있는데 이 글을 통하여 도편수 권동삼(權東三)과 부도편수 이군술(李郡述)에 의하여 다시 개주(改鑄) 되었으며, 처영스님이 직접 주조하고 감독 하였음을 알 수 있다._출처 선운사
선운사 대웅전(禪雲寺大雄殿)
보물 제290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선운사 대웅전은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하며 현재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다시 지은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 광해군 5년(1613)에 지은 것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기둥위의 장식구조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에는 높은 기둥 두 개를 세워 간단히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건물 뒤쪽의 처마는 간략하게 처리되어 앞뒤 처마의 모습이 다르며 벽은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널빤지벽이다.
안쪽 천장은 “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였고 단청벽화가 매우 아름답다. 조선중기의 건축답게 섬세하고 장식적인 구성과 빗살 여닫이 문이 화려한 건물이다._출처 문화재청
선운사 육층석탑(禪雲寺 六層石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원래는 9층 이었으나 현재는 6층만이 남아 있다. 방형의 축대 안에 지대석을 세우고 각층에 사각형의 중석을 올렸다. 6층 옥개석 위에 복발이 있고, 그 위에 팔각의 귀꽃으로 각축된 보개를 얹어 놓았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때 행호선사가 홀로 우뚝 솟은 이 9층 석탑을 보고 사찰의 중창(重創)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_출처 선운사
선운사 영산전(禪雲寺靈山殿)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선운사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 “도솔산선운사영산전조성시주록서(兜率山禪雲寺靈山殿造成施主錄序)”에 의하면 1713년(숙종 39)에 태학(太學)과 태산(太山)두 승려가 장륙화신불(丈六化身佛)을 봉안하고자 2층으로 된 각황전(覺皇殿)을 건립하였다.
100여년 만에 각황전이 기울자 1821년(순조 21)에 1층으로 고쳐 세워 영산전이라 하였다. 그리고 목조 삼불상(석가여래불좌상과 좌우로 협시보살상(제화갈라 보살입상. 미륵보살 입상)을 안치하고, 협시보살 좌우로 목조 16 나한상이 있다. 나한상은 1821년(순조 21)에 조성한 것으로 79∼85cm의 높이다. _출처:고창군
영산전 목조삼존불상(靈山殿 木造三尊佛像)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 선운사 영산전은 본래는 키가 1장 6척(약 4.8m)이 되는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모셔 장륙전(丈六殿)이라 하였으나, 건물이 기울어 여러차례 수리를 거쳐 1821년경 부터는 영산전이라하고 향나무로 조각한 3개의 불상을 봉안 하였다.
목조삼존불상을 모신 이곳에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후 대중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이르는 광경을 묘사한 탱화(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거는 그림)가 있다. 영상전 안에는 향나무를 조각하여 금을 입힌 석가여래좌상(고오타마 싯다르타의 성불 후 이름)을 주불로 하여 좌우에 갈라보살(竭羅菩薩 :연등불의 화신)과 미륵보살(彌勒菩薩 :미래에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입상,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두었다. 석가여래좌상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나무로 된 연꽃무늬 좌대 위에 있다.
양쪽 보살은 화려하게 장식된 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이 불상들은 획일적인 얼굴 형태와 딱딱한 표정, 단순한 몸의 굴곡, 평평한 옷 주름등으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_출처 선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