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냉골에서 남산 금오봉까지

승학2 2017. 9. 23. 21:15

경주남산(慶州南山)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 한다.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468m) 과 남의 고위봉(高位峰: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어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은 한 구비를 돌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마애불이 맞이하고 골골이 남아 있는 수많은  절터와 유적은

아름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남산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산 자체가 문화재인 것이다우거진 송림사이로 뻗어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노라면 곳곳에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오후에 서남산 주차장에 도착하여 귀가할 시간을 감안하여 남산 금오봉에 올라 갔다가 바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서남산 주차장- 삼불사 - 바둑바위 - 상사바위-금오봉 갈림길에서-상신암-마애불상-삼릉-서남산 주차장 도착

 

경주 삼불사

경주시 배동 산65-2

 

삼불사(三佛寺)는 경주 남산의 선방곡에 있는 사찰이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유물로 미루어 보아 신라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폐사된것을 최근에 중창했다.

 

사찰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고 삼존석불입상(삼체석불)과 통일신라 이전에 2기의 석탑이 있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재63

 

삼불사 옆에 있는 이 세 석불은 이 주변에서 묻혀있던 것을 1923년에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운것이.

본존불은 높이 2.75m이며, 좌우 보살상은 높이가 2.28m2.2m이다삼존이 모두 명랑하고 진스러운 어린 아이들처럼 보인다. 풍만한 얼굴에 크게 반원을 그린 눈썹이 깊이 패어 졌고  그  밑에 눈 두둥이 부풀어 올라 가느스름한 눈자위에 그늘을 지우면서 두 눈이 천진스럽게 웃음을 짓는다. 짧은 코아래 두툼한 입술. 그 양가에 언덕을 이룬 두빰에 어려 화사한 미소가 파어 난다. 두 눈썹 사이에 백호가 뚜렷하고 나발은 구슬띠처럼 표현되었다. 네모난 발은 평평하게 대좌를 밟아 편안하고 두꺼운 가사에는 굵은 옷주름이 듬성듬성 U자형의 대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인은 시무외인(施無畏印 : 두려움을 없애준는 약속)과 시여원인(施與: 원하는 바를 모두  주겠다는 약속)하고 있다. 삼국시대 불상은 대게 이러한 수인을 하고 있느데 통인이라 한다.

 

좌협시보살상은 오른손에 설법인을 하고 왼손은 정병을 힘껏 움겨쥐고 있다. 가느스름한 작은 눈이 며 조용한 코 상현달 모양으로 내민 입술은 모두 조그맣게 나타나 있는데 비해 두빰은 널따랗게 언덕을 이루었다보름달 같이 둥그런 얼굴에 부드럽고도 광한 미소가 넘친다. 두광은 장식이 없고  머리에는 관대를 두르고 삼면두식(三面頭飾)으로 장식되었다. 목에는 세 개의 영락(瓔珞)이 달린 목걸이를 걸렀고 가슴에는 승기지가 비스듬하게 가러져있다.

 

우협시보살상은 이중의 연화대 위에 서서 오른손은 영락을 잡고 왼손은 경책을 쥐고 있는 모습이.

몸은 삼굴자세를하고 있어며 어깨는 약간 움츠리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눈은 가느스름하여 양눈에는 웃음이 서려있고 코는 삼각형로 짧고 입술은 조금 큰편인데 양가에 깊게 파여진 두빰에 언덕을 이루면서 부드러운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둥근 두광의 테두리에는 두 줄의 선을 돌리고 5구의 화불과 두 송이의 보상화가 배치되어 있어 특이하다. 세줄로 된 영락은 아래쪽에 큰 연꽃이 한송이 달려있고 허리를 감은 군의 자락을 동여맨 끈이 화려하게 드리워져 있다. 본존불과 좌협시보살은 7세기 중엽, 우협시보살은 7세기 후반에 조성된 신라불상의 대표작이다. _출처 : 경주시

 

 

 

바둑바위

냉골 암봉 바위산 꼭대기에는 금송장터라고 전해오는 건물터가 있다. 그 옆 바위벌판에는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하며, “동경잡기”(1669)에는 신라때 옥보고가 거문고를 커던 곳이라고 한다. 전망이 좋아 서라벌 벌판과 북남산이 모두 보인다.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면 상사바위를 돌아보고 이곳에서 왔던길을 돌아 내려가거나 삼불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금송정(琴松亭)

금송정은 이곳 금오산에 있던 정자인데 경덕왕때 음악가 옥보고(玉寶高)가 가야금을 타며 즐기던 곳이다. 금송정이 있었다는 이곳 냉골 바위산은 그 모습이 괴상하고 거대한 바위 더미로 밑에서 쳐다보면 정상은 구름이 걸린 듯 드높아 보인다. 옆의 금오봉 방향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는 상사암(상사암)이라 한다. 옥보고는 이곳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벗 삼아 가야금을 뜯으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158

 

상선암에서 150m쯤 올라가면 거대한 자연 암반의 벽면에 6m높이로 양각된 불상이있다. 이 여 래좌상은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얼굴의 앞면과 귀부분까지는 고부조로 원만하게 새겨진 반면, 머리 뒷부분은 투박하게 바위를 쪼아 내었다. 짧은 목에 삼도는 없고, 건장한 신체는 네모난 얼굴과 잘 어울린다. 오른손은 가슴앞에서 설법인을 짓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결가부좌한 다리위에 올려놓았다불상의 몸부분은 거칠고 억세게 선각하였고 좌대부분은 부드러워지다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듯한 모습이다.

대좌는 중대석이 생략된 채 양련과 복련이 서로 맞붙어있으며, 양련의 연잎안에 다시 화문(花紋)을 장식 하였다. 이러한 조각수법은 불교가바위신앙과 습합하여 바위속에서 부처님이 나오시는 순간을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입체감이 없는 신체표헌, 힘이빠진 옷 주름선 등으로 보아 9세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거대불상이다.-출처 경주시

 

 

 

 

마애선각보살상

선각은 있는것 같으나  아무리 보아도 보살상의 하반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경주시에서 복원을 하여 누구든지 이해될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삼릉계곡 상선암

이 암자에 대하여는 옛 절터에 90여전 세워진 사찰이라고 하나 역사나 건립에 대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금오봉을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목으로써 등산객에게 꼭 둘러 보는 암자이다.

 

 

 

선각 마애불

석조여래좌상의 왼쪽 개울을 건너면 상선암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 무덤 주변에서 바라보면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30m의 바위 절벽면에 얼굴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상이라고하나, 마모가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서 불상의 윤각도 찾기 어렵다 하루속히 복원 되었서면 한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보물 재666

 

선각여래좌상에서 오른쪽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솔숲에 많은 바위무리가 있고,  그  가운데 순백

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상이 화려한 연화대석 위에 앉아 계신다. 연화대좌는 투박하게 팔각으로 깍은 하대석과 면마다 안상을 새긴 중대석을 놓고 그 위에 화려한 보상화 연꽃을 올려 놓았다. 안상이란 귀인들이 앉는 평상을 말하는 것이니 중대석 위는 절대로 준엄한 세계라는 뜻이다.

이렇게 존귀한 평상위에 보상화로 장식된 화러한 둥근 연꽃송이를 얹어 놓았으니 이 연꽃은 수미산 위에 핀 하늘의 꽃송이인 것이다. 이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하대석이다. 보통불상의 하대석에는 목련을 새기는데, 이불상은 하대석을 팔각으로 거칠게 깍고 말았다. 불상이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이 불상 주의에도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보이지않아 처음부터 노천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의 분위기와 조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부처님께 서 눈비를 맞는 한이있더라도 전각을 짓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다. 광배의 안쪽에는 부드러운 넝쿨무늬를 새기고 바깥쪽은 힘있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광배는 윗부분이 조금 깨진 채로 불상 후면에 세워졌으나 1963년 겨울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려 500812월 상호와 광배를 복원하였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된 불상이다. 출처 설명문에서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159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稜溪谷 線刻六尊佛)

지방유형문화재21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菩薩像)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릅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를 꿰어 만든 목걸이을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法堂)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보존은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 대좌(臺座)에 앉아있다. 머리둘레에 두광(頭光)만 새기고 몸둘레의 신광(身光)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한 보살 두분이 서있다. 보통 이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출처 안내문에서

 냉곡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을따라 계곡으로 약 500m쯤 올라가면 길옆 바위 위에 머리없는 석불좌상이 앉아 계신다. 높이가 1.6m에 무릎 너비가 1.56m나 되는 큰 좌불이다. 1964년에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지금의 장소에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거의 없고, 옷주름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게되어 수인은 알수 없다. 편안히 앉은 자세이며 힘있게 주름잡힌 삼도, 당한 가슴, 넓은어깨, 탄력있는 조, 위풍당당한 자세로 보아 8세기 중엽 신라 전성기의 불상이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 끈을 매듭지어 무릎아래로 드리워진 두줄의 영총수실은 사실적으로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 끈을 매듭지어 무릎아래로 드리워진 두줄의 영총수실은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매듭 공예가 먼 신라 때부터 전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부처님의 치마 역시 예쁜 매듭으로 묶어져 있다. 이 불상의 대좌는 파괴된 것이아니라 거칠게 치석된으로 추정되어 특이하다.-출처 안내문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三稜溪谷 磨崖觀音菩薩像

  지방유형문화재19

 

머리없는 석조여래좌상에서 북쪽 산등성이를 쳐다보면 뾰족한 바위 기둥이들이 솟아 있는데 그중 한바위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있다. 살결이 풍만하고 얼굴은 미소를 머금었고 오른손은 설법인을 하고 왼손은 정병을 들고 있다. 머리에 쓴보관에는 화불을 배치하여 관세음보살임을 표시 하였는데, 목걸이와 가사를 동여맨 끈은  나비 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그 자락이 아래로 드리워리워져 있다. 발가락 끝에까지 피가 도는 듯 섬세하게 조각된 이 불상은 따뜻한 촉감을 일르키는 복련(覆蓮) 위에 서 계신다.

이 불상이 가장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순간은 석양해질 무렵과 단풍이 드는 가을철 석양때가 더욱 좋다. 보살상의 높이는 154cm, 어깨너비는 54cm이며,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출처 안내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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