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10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

필암서원(筆巖書院) 사적 제242호전라북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필암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대가로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동국 18현 가운데 한 분인 문정공 하서 김인후(文正公 河西 金麟厚)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선조 23년(1590)에 그의 문인 변성온(변성온(卞成溫)), 기효간(奇孝諫), 변이중(邊以中)등 호남 선비들이 장성읍 기산리(岐山里)에 창건하였다.필암서원은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다. 휴식처이자 대문인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원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배치하였다.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에 ..

한국의 서원 2024.10.24

달성 도동서원

달성 도동서원(達城 道東書院)사적 제488호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한훤당 김광필(寒暄堂 金光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이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며, 고종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이 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쌍계서원이란 이름으로 현풍 비슬산 기슭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뒤 1604년(선조 37)에 보로동 서원이란 이름으로 지금 이 자리로 옮겨 다시 세웠으며, 1610년(광해군 2)에 “도동” 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서원의 정문인 수월루 아래 외삼문과 환주문을 지나면 강당인 중정당과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중정당 오른쪽 건물은 서원..

한국의 서원 2024.08.20

논산 돈암서원

돈암서원(遯巖書院)(사적 제383호)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을 향해 앞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배산임수 형태를 하고 있다. 전면 좌측에는 게룡산이 자리하며, 우측에는 대둔산을 끼고 있는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서원이다.서원은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종생 사후에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창건 하였으며, 조선중기 이후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 되었다. 현종 원년(1660)에 사액을 받았으며, 고종 8년(1871)에 흥선 대원군이 전국 650여 개에 해당하는 서원들에 ..

한국의 서원 2024.05.05

함양 청계서원과 구천서원

청계서원(靑溪書院)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669-1 이 서원은 1906년 조선 성종(1457∼1494)때 사림파를 대표하던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이 한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던 청계정사(청계정사)옛 터에다 유림에서 세운 것이다. 생전에 김일손은 청빈함을 요구하는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냈으나 연산군(1476∼1506)때 조의제문(弔義帝文)사건에 휘말려 무오사화로 희생 되었다. 현재 청계서원에서는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의 중앙에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지붕위에 까치 박공(“ㅅ”자 모양의 널빤지)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형태의 강당이 있으며, 강당 뒤쪽 높은 지대에는 사당인 청계사가 있다. 강당 앞으로는 학생들..

한국의 서원 2022.04.09

남계서원

남계서원(南溪書院)사적 졔499호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사원은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선현들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남계서원은 조선초기 성리학자이며, 동방 5현으로 불리는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1552년 개암 강익(介菴 姜翼)을 비롯한 지방 유생들이 건립하였다.1566년(명종 21)에게서 “남계(藍溪)”라고 사액 되었으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다. 1603년에 나촌(羅村: 현재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리마을)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1612년에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1634년(인조 12)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강익(姜翼)을 제향하고, 1642년(인조 20) 유호인(俞好仁)과 정온(鄭蘊)을..

한국의 서원 2022.03.24

옥산서원과 주위 관련 유적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 제154호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이 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웠다. 이언적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그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종묘에 명종의 공신으로 모셔져 있다. 그가  타계한 후 1572년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유림의 뜻에 따라 서원을 창건하였으며 1574년에는 선조에게서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흥선 대원군이 서원 철페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중 하나이다. 서원 건축의 역사로 보면 옥산서원은 초기의 건축물에 해당하는데 당시에 지어진 서원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구성을 따랐던 데 비해 이 서원은 틀에 짠 듯 질서 정연한 형식..

한국의 서원 2021.03.16

무성서원과 주변 유적

무성서원(武城書院) 사적 제166호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무성리 500 무성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neo-Confucian Academies)”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

한국의 서원 2021.01.22

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屛山書院) 사적 제260호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이 선조 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류성룡은 선조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판을 모시는 서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講學)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祭享)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홍선 대원군이 서원 철패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의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한국의 서원 2019.11.26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제170호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도산사원은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건립된 것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과 제자들이 향사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곳이다. 영지산(靈芝山)을 뒤로하고 동취병(東翠屛), 서취병(西翠屛)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안동호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선조 8년(1575)에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이 서원은 영남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대원군 서원 철패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1969년과 1970년에 정부의 고적보존 정책에 따라 성역화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보수하고, 유물전시 관인 옥진각(玉振閣)을..

한국의 서원 2019.10.29

영주 소수서원

영주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제55호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풍기군수였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선생이 고려말 유현(儒賢)인 안향(安珦)선생의 연고지에 조선 중종 37년(1542) 사묘(祠廟)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 해에는 학사(學舍)를 건립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하였다.명종 5년(1550)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하여 소수서원 (紹修書院)이란 사액(賜額)을 받게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한국 최초의 사립대학교)으로 퇴계선생의 제자 대부분을 포함하여 4천여명의 유학들이 배출되었다.이곳에 주향(主享)된 회헌(晦軒) 안향(1243-1306)선생은 도첨의 중찬(都僉議 中贊)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

한국의 서원 201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