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구미 도리사

승학2 2025. 6. 5. 21:30

도리사(桃李寺)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아도(阿道)가 신라에 전법(傳法)하며 진기승지(眞奇勝地)를 찾아다니든 중, 눈속에 오색의 도화(桃花)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지은 다음 도리사라 불렀다 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수 없지만 신라 최초의 절로 전해진다. 1677년(숙종 3) 화재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729년(영조 5) 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도금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한 뒤 금당암을 도리사라고 고쳐 불렀다. 1807년(순조 7)과 그뒤 여러 차례 걸쳐 중창하여 오늘에 이러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極樂殿), 태조선원(太祖禪院), 삼성각, 조사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석탑(보물), 후불탱화, 신중탱화, 판목 24매로 된 “묘법연화경” 등이 있다. 1976년 6월 아도화상 석상이 발견 되었으며, 1977년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을 해체 복원하던 중 금동 6각탑형 사리구와 전신사리 1과가 발견 되었다._출처 : 브리태니커

일주문

절로부터 15킬로미터 떨어진 길목에 세워진 山門은 팔작지붕 一柱門 形式의 13평 크기의 建物이다. 扁額은 “孩童最初伽藍太祖山聖地桃李寺”라 하였다.

 

 

 

 

 

 

 

1977년 절의 동쪽에 있던 石鐘形 浮屠를 境內로 옮겨 모시던 중 金銅六角舍利函(國寶)과 함께 水晶처럼 맑은 舍利 1顆가 發見 되었다. 이에 住持 法燈和尙은 寂滅寶宮을 創建하고 舍利塔을 세워 發見된 舍利를 永久히 安置했다.

阿度和尙은 아도(我道). 아두(阿頭)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아도본비(我道本碑)에 의하면 아버지는 정시연간(正始年間 : 240∼24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曹魏人) 아굴마(我堀摩)이며, 어머니는 고구려인 고도녕(高道寧)이라고 한다. 5세 때 출가했고, 16세 때 위(魏)에 가서 아굴마를 만나보고 현창화상(玄彰和尙)에게 배운 뒤 19세 때 돌아왔다. 어머니의 명으로 신라에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263년(미추이사금 2) 신라에 왔으나 포교에 실패하자 일선현(一善縣 : 지금의 경북 선산)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다.

당시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람을 구하고 있을 때 궁궐에 들어가 공주의 병을 치료해준 공으로 불교의 전도를 허락 받아 흥륜사(興輪寺)를 짓고 불법을 강연했다. 그러나 미추이사금이 죽은 뒤 신라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고 헤치려 하자 다시 모례의 집에 돌아와 무덤을 파고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묵호자(墨胡子)란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신라 소지마립간 때 시자(侍者) 3명을 대리고 일선군(一善郡) 모례의 집에 머무르다가 죽었으며, 시자 3명이 불경을 강론했다고 한다. 한편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서축(西竺)사람이라고도 하고, 오(吳)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했다._출처:브리태니커

태조선원(太祖禪院)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이다. 내부에 1931년 조성된 석가모니불 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수행하기 좋고 도인이 많이 나 영남의 3대선원 중 “제일도리”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야은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이 이곳에서 스님들에게 글을 배웠으며, 근래 선지식인 운봉성수(雲峰性粹 1889∼1946) 스님과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정면에는 “태조선원” 편액이 걸려있는데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인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다. _출쳐: 도리사

 

도리사 석탑(桃李寺 石塔)

보물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구미 도리사 석탑은 도리사 극락전 앞뜰에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3.3m이다. 이 석탑은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 구성이 일반적인 석탑과는 전혀달라 독특한 모습이다. 탑의 기초인 기단은 동서남북 네 면에 길고 네모난 돌을 6∼7장씩 병풍처럼 둘러 세워, 보통 석탑의 기단보다 높게 만들었다. 기단의 남쪽 면 가운데에는 문짝을 새겼다. 기단 위에는 세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놓여있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벽돌 모양의 작은 돌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들었고, 2층 몸돌 남쪽 면 가운데에는 두짝의 문을 새긴 돌을 끼워 넣었다.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2층과 달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각층의 지붕돌 윗면은 계단 모양의 층단을 이룬다. 이러한 형태로 볼 때, 이 석탑은 벽돌로 쌓은 석탑인 전탑의 양식을 모방해 만든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보인다. 조각 양식과 돌을 다듬은 수법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_출처 :도리사

도리사 극락전(桃李寺 極樂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구미 도리사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관장한다는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50년(효종 1)에 지문대사가 확장하여 지었다고 전한다. 1875년(고종 12)에 용해(龍海)화상이 낡은 부분을 고친 후에 오늘날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외부 앙서와 상부 익공을 얹은 지붕의 바깥구조와 건물 안 닫집의 형상이 경복궁 근정전과 비슷하며, 조선 말기의 건축특징을 갖추고 있다. 안에는 1645년(인조 23)에 제작한 아미타후불탱을 모셨고, 근래에 지장탱과 신중탱을 제작하여 모셨다.

건물안 단청에 연지회상(蓮池會上)이라는 글씨와 구품연대 그림이 남아 있는데, 이는 연못에서 아미타불이 극락세계에 모여 있는 모든 보살 신중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_출처 : 도리사

 

 

 

 

아도화상 좌선대(阿度和尙 坐禪臺)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아도화상의 예언처럼 집안으로 칡넝굴이 들어오자 모례장자(털례)는 칡넝굴 길을 따라 이곳까지 와 보니 바위 위에는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절을 한 뒤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를 묻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성스러운 길지임을 알아 이곳에 절을 짓고자한다” 하였습니다.

이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지어 복숭아꽃과 오얏꽃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고 하였으며, 이 바위는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앉았던 자리입니다_출처;도리사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 시주질비(阿道和尙 事蹟碑 및 桃李寺 佛糧畓 施主秩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아도화상 사적비와 도리사 불량답 시주절비는 도리사 남쪽의 비탈진 소나무 숲에 남쪽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효종 6년(1655)에 세운 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내용을 적은 것이며,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라는 글자를 음각으로 새겼다. 받침돌은 자연석이며 비석의 머릿돌 앞면에는 쌍용을, 뒷면에는 4룡을 조각하고 그 사이에 구름을 타는 용을 조각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불량답 시주질비는 도리사 운영에 보태기 위해 논과 밭을 보시한 사람의 이름과 그 양을 기록한 것으로 숙종 38년(1712)에 세웠다. 비석의 앞면과 뒷면에는 연꽃 봉우리와 줄기를 돋을 새김하였고, 머릿돌 중앙에는 보주를 새겼다. 이 비석은 능철(能哲)스님 책임 아래 만들어 졌으며, 김성원(金成元)이 글자를 새겼다._출처 : 도리사

 

*보주(보주)위가 뽀족하고 좌우 양쪽과 위에 불꽃모양의 장식을 단 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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