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안동 병산서원

승학2 2019. 11. 26. 22:10

병산서원(屛山書院)

사적 제260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이 선조 8(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류성룡은 선조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판을 모시는 서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講學)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祭享)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1863)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홍선 대원군이 서원 철패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의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동재 뒤편으로 서있는 것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庫直舍)이고, 입교당의 서쪽 뒤편에 서 있는 것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다. 입교당의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尊德祠)가 있고, 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열려 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 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면 어디 하나 막힘이 없이 탁 터여 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진다. 병산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되어 있어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다.-출처 : 병산서원

 

 

 

광영지(光影池)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물길을 끌어 들어 만든 천원지방(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천원지방은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조성 원리로 조상들의 우주관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땅을 의미하는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두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심양성(修心養性)을 근본으로하여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다.

만대루(晩對樓)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학 공간이다. 200여 명을 수용하고 남을직한 장대한 이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깍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 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리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입교당(立敎堂)

병산서원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핵심적인 강당이다. 원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렸다. 전형적인 5칸의 강당 구성으로 가운데 큰 마루와 양쪽 끝에 온돌방이 배치 되어 있다. 동쪽 끝 칸은 원장실로 명성재라 부르고 서쪽 끝 칸은 부원장이나 교수가 머무는 방으로 경의재라 부른다. 유생들이 한달 동안 자습한 내용을 구술로 시험보는 강회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서재(西齋)

동재와 마주보는 건물. 동재와 달리 작은 방에 책을 보관하는 장서실이라는 현판이 걸러있다. 나머지는 마루가 깔려 있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인다.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짧은 후배들의 공간이며, “정허재(靜虛齋)”이다.

동재(東齋)

기숙사와 서재의 역할를 하는 대칭적인 건물이 동재. 서재이다. 동재는 가운데 마루가 있고, 좌우에 크기가 다른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앞쪽에 마루를 깔아 공간의 띠를 이룬다. 편액은 거동을 바르게 하라는 뜻을 담은 동직재(動直齋)”이다.

장판각(藏板閣)

장판각은 책을 찍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서원의 출판소 기능을 보여준다. 병산서원의 장판각은 바닦 밑을 띄우고 앞면에 판벽을 구성하여 목판이 습기로부터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 하였다. 강당인 입교당 대청의 뒷 창을 통해서 늘 감독할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전사청(典祀廳)

제사 때 재물을 장만하고 보관하는곳. 제사하기 전날 고직사에서 준비한 재료를 법식에 맞게 가공하고 보관한다. 신성한 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에 담을 둘렸다. 부엌, 온돌방, 마루방 각 1칸이 놓인 단순한 구성이다. 재수 보관을 위해 바닥도 높여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았다.

 

 

달팽이 뒷간(化粧室)

서원 밖 주소(廚所) 앞에 있는 화장실이다.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굴게 감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양새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입문을 달아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이다. 지붕이 따로 없는 이 하늘 열린 달팽이 뒷간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400여년 전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사적 제260(1977)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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