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영주 소수서원

승학2 2018. 11. 26. 16:48

영주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제55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풍기군수였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선생이 고려말 유현(儒賢)인 안향(安珦)선생의 연고지에 조선 중종 37(1542) 사묘(祠廟)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 해에는 학사(學舍)를 건립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하였다.

명종 5(1550)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하여 소수서원 (紹修書院)이란 사액(賜額)을 받게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한국 최초의 사립대학교)으로 퇴계선생의 제자 대부분을 포함하여 4천여명의 유학들이 배출되었다.이곳에 주향(主享)된 회헌(晦軒) 안향(1243-1306)선생은 도첨의 중찬(都僉議 中贊)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시며, 동방 신유교(新儒敎)의 비조(鼻祖)이다._출처:소수서원

학자수림(學者樹林)

겉과 속이 모두 붉다하여 적송이라 부르며 3백년에서 천년에 가까운 적송 수백그루가 서원 주변을 에워 싸고 있다.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이 소나무들을 학자수(學者樹)라고 부른다._출처:소수서원

 

서원 왼편에 봉곳하게 둔덕은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처럼 보여 영귀봉(靈龜峰)이라한다. 영귀봉 주변으로 수백년 된 적송이 장관인데 소나무에게서 선비의 충절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자수(學者樹)라 불리기도 한다. 보기에도 멋진 소나무 숲은 서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영귀봉 위에는 작별의 정을 나누던 소혼대(消魂臺)가 있다.

지도문 오른쪽 경렴정(景濂亭)은 죽계수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학문을 이야기 하던 곳으로 1543년 주세붕(周世鵬)이 세웠다. 경렴정에는 스승인 퇴계(退) 이황(李滉)의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썼다고 전해지는 초서의 대가 고산(孤山)황기로의 현판이 남아있다._출처:소수서원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당이라고 하는 불화를 그린 깃발을 걸던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던 기둥이다.__출처:소수서원

경자바위(敬字巖)

주세붕은 경(敬)이라는  한자를 바위에 새겨 남겼다. 경자는 선비의 덕목을 나타낸 글자로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더블어 안향(安珦)을공경하고 기리는 마음을 후대에 전한다는 뜻도 있다. 경자 위의 백운동(白雲洞)은 소수서원의 본래 이름이다._출처:소수서원

 

 

취한대(翠寒臺)

“취한”이란 뜻은 “연화산의 푸른 기운과 죽계의 맑고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옛 송취한계(松翠寒溪)의 비취 취(翠)자와 차가울 한(寒) 자에서 가져와 퇴계 이황이 지었다._출처:소수서원

 

 

 

성생단(省牲壇)

서원의 정문인 지도문(志道門) 앞 잔디 제단은 성생단(省牲壇)이다. 매년 음력 3월 9일(초정일) 제향때에 희생(犧牲)을 간품(看品)하여 안향(安珦)선생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가축의 흠결을 살피고 잡던 제단터이다.

 

 

경렴정(景濂亭)

신재 주세봉이 창건. 서원담 밖 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하여 시연(詩宴)을 배풀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꾸던 곳이다. 정자 이름은 북송의 철학자인 염계 주돈이를 추모하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_출처:소수서원

서원은 크게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으로 나눌수 있다. 강학역역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앞의 제일 큰 건물이 강학당(講學堂: 보물제 1403호)이고, 오른쪽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지락재(至樂齋), 학구재(學求齋),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가 위치한다. 강학당 왼쪽으로 장서각(藏書閣)이 있다.

건물배치는 하학상달(下學上達),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한다.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明倫堂)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출된 인재가 4,000여명 달한다. 1543년에 건립된 강학당 내부에는 명종임금이 내려준 친필 편액이 걸려 있으며,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장서각은 책과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_출처:소수서원

강학당(講學堂)

보물 제1403호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는 교실의 역할을 하던 곳으로 사방으로 툇마루가 놓여있다. 전청후실(前廳後室)의 특이한 예로서 현판이 걸린 쪽이 건물 앞이 되며, 건물바깥에 게첨된 현판 "백운동"은 서원의 처음 이름이다._출처:소수서원

 

소수서원 백운동(白雲洞)현판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창건사에는 주자(朱子)의 여산 백록동(白鹿洞)서원을 본따 백운동(白雲洞)사원으로 불렀다._출처:소수서원

 

소수서원 현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0

 

퇴계이황 건의로 명종(明宗)이 대제학 신광한에게 짓게하여 친필로 사액(賜額)한 현판이다. _출처:소수서원

 

장서각(藏書閣)

오늘날의 도서관으로 임금이 직접 하사하신 “어제내사본”을 비롯하여 많은 장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장서각 앞에는 정료대가 밤에 서원을 밝히는 조명시설로 윗부분 석재 위에 관솔을 피워 정원을 밝혔다.

관세대(盥洗臺)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를 올려놓는 받침돌이다.

 

 

 

 

제향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문성공묘(文成公廟: 보물 제1402)와 전사청(典祀廳), 영정각(影幀閣)등의 건물이 있다. 문성공묘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문성공 회헌(晦軒) 안향(安享)의 위패를 모신 사묘(祠廟)1542년 주세붕(周世鵬)이 세웠다. 문성공묘를 사()라 하지 않고 묘()로 격을 높여 부른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매년 봄, 가을로 두 번의 제(향사)를 지낸다. 문성공묘 뒤편에 있는 전사청은 제기를보관하고 제물을 준비 하는 곳이다.일반적으로 전당후묘(前堂後廟)라 하여 강학공간 뒤에 제향공간을 두는데 서쪽방향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사상에 따라 강학공간 측면 서쪽에 제향공간을 배치한 독특한 사례이다. 서원에 영정각이 있는 것도 특이한 일로 안향초상(국보 제111)과 주세붕초상(보물 제717)등 보물급 영정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1975년에 특별히 건물이다. 현재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 _출처:소수서원

문성공묘(文成公廟)

보물 제1402호

 

회원 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신곳으로 나중에 안보와 안축, 주세봉을 함께 모시고 매년 음력3월,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하고 있다. 묘당현판 글씨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글씨이며 서원은 보통 전학후묘(前學後廟)이나 이곳은 동학서묘(東學西廟)이다. 담장 앞에는 “숙수사지 목탑” 흔적이 남아 있으며 왕이나 나라의 큰 인물을모신 곳에서만 묘(廟)호를 쓰게 하였다._출처:소수서원

영정각(影幀閣)

회원 안향선생을 비롯 여섯분(회암주희. 회현안향. 신재주세붕. 오리이원익. 한음 이덕형. 미수허목)의 초상을 봉안한 곳이다.

일영대(日影臺)

일영대는 해시계로 알려져 있다. 맑은날 윗 부분 돌에 꽂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아랫돌에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문지도리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숙수사의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_출처:소수서원

사료관(史料館)

소수사원에 대한 관람객들이 이해를 돕고자 관련자료를 정리해 둔 곳으로 소수서원의 역사와 전통 및 주요 배출 인물들에 대해 패널과 키오스크로 설명해 놓았을 뿐만아니라 관련 유물들도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소수서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_출처: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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