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은 연오랑세오녀의 터전인 청림 일월(도기야)를 시점으로 해안선을 따라 동해면 도고해변과 선우바위길을 지나 구룡소길을 거쳐 호미곶 해맞이 광장까지 4개 코스 25km중에 3코스인 대동배 2리마을부터 호미곶 해맞이 광장까지가는 약 8km 구간을 선택하였다.
독수리 바위
이 지역은 풍파가 심하면 고기(청어)가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까꾸리계라 부른다.
독수리바위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조각된 바위의 형상이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하여 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미곶의 땅끝인 이곳에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은 대흥산 너머에서 비추는 낙조로 층층의 산과 시가지, 특히 어링이불의 포스코 굴뚝을 선명하게 하는데 그 화면이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절정으로 언론, 방송사 등 많은 사진작가들이 작품사진을 찍기도 한다.-출처 안내문
쾌응환호 조난 기념비
일본이 청.일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이 본격화될 무렵 당시 1907년 9월 9일 일본수산강습소 실습선인 쾌응환호(137톤급)가 수산실험(해류, 어족분포, 연해수심등 조사)을 위하여 내항하였다가 구만2리 앞 해중에서 좌초되어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일본의 압력으로 바위와 파도 및 조류가 심한 교석초 앞에 해상안전을 유인하는 수중등대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26년 9월 9일 당시 그 배의 승무원과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이곳에 “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환호 조난 기념비”를 세워 해마다 참배를 하여 왔으나 해방 후 현지 주민들이 이 비를 훼손하여 방치해 오다가 1971년 10월 재일교포 한영출(韓永出)의 주선으로 방치되었던 비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지금은 구만2리 까꾸리계에 해안도로가 개설된 후 도로변에 다시 세워 주변을 단장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일본의 후손들과 관계자들이 참배하고 있다.-출처 안내문
호미곶 상생의 손
상생의 손은 1999년 6월 김승국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 교수팀이 제작에 착수하여 12월에 완공된 조형물 중 육지에 높이 5.5m 왼손을, 바다에 8.5m 오른손을 위치하게 하여 이를 “상생(相生)의 손” 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상생의 손은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통해 화해와 상생의 기념정신 즉 온 국민이 하나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왼손 앞에는 20세기 마지막 불씨와 호미곶에서 채화된 새천년 불씨,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갖고온 불씨이다.-출처 포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