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남해 금산(錦山)

승학2 2017. 11. 16. 16:00

금산(錦山)

명승 제39호인 금산은 해발 705m로 한려해상 국립공원내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38경이 있으며, 온갖 전설을 담은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하여 소금강(小金) 또는 남해금강(南海錦江)이라 불린다. 원효대사가 이산에 보광사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보광산으로 불렀으나 고려말 태조 이 성계가 이곳 금산에백일기도를 한뒤 조선 을 건국하게 되어 보은 한다는 뜻으로 산 이름을 "금산(錦山)"이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또한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은 금산의 기암 절벽 영봉에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처인 보리암

자리 잡고 있다.

 


 

 

 

 

 

 

 

 

망대(望臺)

(금산 제1경)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서 사방의 조망이 넓고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바라 볼수있는 곳 이라하여 망대라 한다. 이곳에 오르면 금산의 38경과 남해의 만경창파를 한 눈에 볼수 있으며 장엄한 일출은 가히 절경이다.

망대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烽燧臺)로 현존하는 것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_출처: 안내문

 

남해금산 봉수대(南海錦山 烽燧臺)

경상남도 기념물 제87호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햇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중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말기와 조선기초 이후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트인 곳에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毅宗 1147-1170 재위)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가운데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四川), 진주 (晉州)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출처 : 안내문

 

문장암(文章岩)

(금산 제2경)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다. 일명 "명필바위" 라고도 한다. 조선 중종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봉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을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 함으로 감탄하여 자연암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상사암(想思巖)

(금산 제27경)

 

이 바위는 조선조 19대 숙종대왕 시절에 전라남도 돌산지역 사람이 남해에 이거하여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은 여인이 이 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었다하여 이 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출처:안내문

구정암 

(금산 제28경)

 

상사암에 구정암이 있다. 상사암에 이어진 아홉 개의 확(홈)이 있어 빗물이 고이면 마치 아홉개의 샘처럼 보인다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세어보면 실제 동글동글한 구멍이 아홉 개도 더 되는 듯하다. 구정암의 물은 바로 상사풀이할 때 썼던 물이라 한다. 이 물로 세수를 하면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숙종때 남해로 귀양왔던 약천 남구만 선생은 이 구정암을 보고 "몇해 동안 이 아홉 개 샘을 팠으랴" 하고 감탄했다.

상사암에서 바라본 보리암

 

부소암(扶蘇岩)

(금산 제34경)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고 한 전설에 의하여 부소대라 부르지만 법왕대라고도 한다. 남해에 와서 금산을 오르지 않고서야 남해를 다녀갔다 말할수 없듯이 금산에 올라 법왕대를 보지 않고 금산을 다보았다고 말할수 없다. 헬기장에서 두모입구로 내려가면 탁 트이는 시야에 요새처럼 거대한 돌산이 우뚝 솟아 있다. 이것이 천해고도 법왕대다.-출처: 안내문 일부

 

부소암자

부소암에서 두모마을 입구로 내려가면서 부소암(법왕대)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타고 좌측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새로운 천애고도 안에 조그만 부소암자가 있다.

암자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이 암자에서 멀리 건너 보이는 바위앞쪽에는 부처님의 옆 얼굴상이 있고 부소암자 옆 위쪽에는 거북이가 하늘을 향하여 기어 오르는 새로운 모습을 보지 않고서야 법왕대를 다보았다고 말할수 없다.

 

 

 

 

 

 

 

흔들바위(요암:搖岩)

(금산 제33경)

 

거북이 모양을 닮아 본래의 귀암(龜岩)이라 하였으나 큰 바위가 한 사람의 힘으로 흔들거리기 때문에 요암(搖岩)이라고도 한다.-출처:안내문

촉대봉. 향로봉

향로봉(香爐峰:금산 제24경)과 옆에 있는 촛대 모양 촉대봉(燭臺峰:금산 제23경)은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기도를 올릴 때 촛대와 향로로 사용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좌선대(坐禪臺)

(금산 제20경)

 

옛날 신라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등 삼사가 수도좌선을 하였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위 위에 이들 삼사가 앉았던 자리의 흔적이 뚜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출처:안내문

 

제석봉(帝釋峰)

(금산 제19경)

 

이 바위에 제석천(帝釋天)이 내려와 놀다갔다하여 제석봉(帝釋蜂)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제석천은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神)을 말한다.

 

일월봉

(금산 제32경)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 형태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 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화엄봉(華嚴峰)

(금산 제31경)

 

바위 모양이 화엄의 한자 화(華)자를 닮았다 하여 화엄봉이라 하며 신라시대의 유명한 원효대사가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였다하여 화엄봉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출처: 안내문

대장봉

(금산 제3경)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바위로서 웅장하고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장봉 왼쪽에는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만장대(坐禪臺)

(금산 제12경)

 

탑대 서남쪽 깍아 세운 듯 천애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으로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형리암

(금산 제4경)

 

금산 보리암 뒤에 있어며,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를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바위라고 한다. 보리암(菩提庵)에서 처음보는 사람은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허리 굽힌 모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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