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암(白蓮庵)
백련암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조선 선조38년(1605)에 서산대사 문하였던 소암대사(昭庵大師)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해인사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기이한 바위의 경치와 탁트인 전망은 가야산 제1경 승지로 손꼽힌다. 암자 좌우로 용각대(龍角臺), 절상대(絶相臺), 환적대, 신선대(神仙臺)등의 기암이 있고 뜰안에 불면석(佛面石)은 천연적으로 한덩이 거암이 반석위에 얹혀 있는 것이 마치 불면과 같다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적광전, 고심원, 원통전, 영자당, 요사채등이 있다. 오래전부터 고승들이 즐겨 수행처로 삼아오든 암자라고 한다. 소암대사를 비롯하여환적. 풍계. 성봉. 인파대사와 같은 스님들이 일찍이 주석하였고 1993년 성철스님께서 입적하기전까지 주석하였다.-출처 : 법보종찰 해인사
성철스님(음력 1912.2.19.-1993.11.4.)
1912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이름은 이상언이고 모친은 진주강씨 였으며 아명은 영주(英柱)이고 아호는 퇴옹(退翁)이다.
1936년 해인사에서 동산(東山)대종사(大宗師)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38년 운봉(雲峰)을 계사(戒師)로 보살계(菩薩戒). 비구계(比丘戒)를 받았고 봉암사(鳳巖寺)에서 청담(靑潭)과 함께 수행하면서 불타(佛陀)답게 살자고 결사(結社) 하는등 새로운 선풍의 고양(高揚)을 지켰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이 되었고 198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출처:위키백과
성철스님 사리탑
사리탑의 모형은 원형의 참배단 내에 정사각형으로 되어지는 3단의 기단위에 서로등을 맞대고 있 는 반구(半球) 위에 원형의 구(球)가 놓여 있다. 원형의 구조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진리를 표현하고 있으며,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는 활짝핀 연꽃을 나타내고 있고, 그밑에는 정사각형의 3단 기단은 불교의 계(戒), 혜(慧), 정(定) 삼학과 더불어 수행과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은 조경을 제외한 면적이 백팔번뇌의 108평이다.-출처 : 법보종찰 해인사
●.보현암
1973년 혜춘스님의 원력으로 세운 비구니 수행처로 가야산과 흥류동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승지이다. -출처 : 법보종찰 해인사
●.삼선암
1893년에 자흥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스님과 지종스님 두분이 중건한바 있으며, 새로 비구니 선원을 세운 것을 비록하여 도량의 규모가 커졌을 뿐만아니라 면모도 새로워졌다. -출처 : 성보종찰 해인사
●.금선암
1945년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로서 큰절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암자이다. _출처:법보종찰 해인사
●.원당암
신라왕실의 원찰로 세운 원당암은 큰절이 였는데 대덕광전과 마주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 잡고있는데, 그래서 본래 이름을 본서사라고 했다. 이 암자는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차례의 증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조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주석했고, 철종 3년(1825)에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1874)에 비구니스님인 성주스님이 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당암에는 점판석 다층탑(보물 제518호), 석등과 정교하게 안상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들의 중요한 사적이 있다._출처 : 법보종찰 해인사
해인사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518호
이석탑은 하대석만 화강암이고 기단부와 몸돌은 청석(靑石)이라 부르는 점판암을 사용하였다. 기단의 구성은 네 매의 판석을 세워 면석으로 삼고 네 귀퉁이의 우주(隅柱)는 별석이다. 옥신부는 모두 없어지고 비교적 얇고 평평한 지붕돌만 십층으로 놓여있다. 옥개부분이 없어져 원래의 모습은 잃었으나, 상승감(上昇感)이 느껴지는 세장(細長)한 탑이었다고 생각된다. -출처: 안내문
석등은 화사석이 없어져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간석(竿石)은 화강암이며 화사석 받침과 지붕돌은 탑과 마찬가지로 점판암이다. 간석은 아무른 장식이 없이 비교적 길고 지붕돌은 평박(平薄)하다. 석등 역시 탑과 동일한 조형감각을 지녔던 것으로 짐작 된다. 재질이 점판암이란 점. 공예성이 풍부한 탑과 석등이란 점이 특징으로 제작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말엽으로 짐작된다.-출처:안내문
혜암스님
혜암스님은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946년 해인사에서 인곡스님을 은사로 득도 하였으며, 효봉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승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하다 죽어라” 라고 서리발같이 독려하던 스님의 생애는 끝없는 정진 뿐이였다.
해인사로 출가한 27세부터 방바닥에 눕지않는 장좌불와 수행과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일중식을 평생동안 지켰다. 스님은 항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서 성철스님 이후에는 종단계혁에 앞장섰다. 해임총림 반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등을 거쳐 조계종 제10대 종정에 추대되었으며, 2001년 12월31일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범랍56세 세수 82세로 열반했다. -출처:다음어학 백과사전
●.홍제암(弘齊庵)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54(치안리)
해인사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
보물 제1301호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과 사리를 봉안한 부도(浮屠)이다. 해인사(海印寺)의 부속암자인 홍제암(弘濟庵) 경내에 있다. 홍제암은 사명대사가 1608년에 선조의 하사로 창건하여 말년까지 수도하다 입적한 곳이다. 부도는 사명대사가 입적한1610년에 만들어 졌고,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부도는 고려의 승탑(승탑) 형식을 계승하여 3단의 연화대좌(蓮花臺座)와 종모양의 탑신(塔身), 둔중한 지봉돌을 잦추고 있다.-출처:안내문
●.금강굴(金剛窟)
1976년에 창건한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서 보현암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_출처 : 법보종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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