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본 암자

오색의 계곡 해인사 주변암자(길상암. 약수암.국일암. 지족암.희랑대.용탑신원)

승학2 2017. 11. 9. 08:47

 

가야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해인사로 진입하는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야면사무소를 지나 해인사로 오르는 계곡은 오랜 세월 동안 물에 깎여 기묘한 암석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 계곡이 신라시대 명유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올랐다는 홍류동이다

현재는 해인사로 향하는 신작로가 넓게 개설되어 그 옛날의 비경이 다소 훼손되었지만 지금도 홍류 동계곡 곳곳의 경치는 대단히 아름답다.

 

암봉과 철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운 수목들 속에 있는 암자들의  빼어난 모습을 담아 봅니다._출처 : 다음백과에서

 

●.길상암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치인리 10)

가야산 천불동 길상암 묘길상봉은 동국여지숭람에서 산의 형세가 석화성을 하고 있어 산능선 줄기마다 바윗돌이 하늘을 향해 불꽃이 일 듯이 줄지어 있는 이곳은 해인사 입구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1972년에 영암대종사께서 창건한 이 암자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습니다.

 

 

 

 

 

 

 

 

대웅전 본존불은 아마타불이시며, 좌측 문수보살 우측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계시며 양쪽에 미륵부처님. 약사부처님과 11면수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영암노스님과 명진스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조상의 극락왕생과 내생의 행복에 직결되는 법신 부처님이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통하여 불법을 교화함을 나타낸다.-출처 :안내문에서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나한님을 모신 전각이다. 부처님에게는 열여섯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그뜻은 성자를 의미한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좌우보살과 18나한 500나한님을 모시고 있. 오백이란 숫자는 부처님의 열반하신 후에 마하가섭이 부처님께서 생전에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하여 회의를 진행했을 때 모인 비구스님이 500몀 인데서 유래됬다. 길상암 나한님은 명진스님께서 100일 기도중에 꿈에 나한님이 현몽하여 이곳 오백성자를 모실 것을 청하여 모시게 되었다고한다. 현재 도량혁신으로 불자의 귀의처 염불도량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출처:안내문에서

 

나한전에서 보궁으로 올라가는 길에 대각천  우물이 있습니다.

 

이곳 길상암 가야산중 묘길상봉 천진보탑 천불동에 천불부처님이 상주하신다 하여 영암노스님과 명진은사스님의 기도 정진에 힘입어서 이곳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하였다 . 현재 도량혁신으로 불자의 귀의처 염불도량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출처: 안내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사리 34과를 모신탑으로 미안마 불교협의회 의장 종정 우소비타대종사께서 모시고 있던 사리를 불기 2538115일 미안마를 방문한 명진스님께 9과와 가사발우 일체를 전하고 253911325과의 사리를 봉안하였다. 출처 : 안내문에서

 

●.약수암

약수암은 비구니 수도처로서 1904년 성주스님이 창건하였고 1927년에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국일암(國一庵)

국일암은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에 대하서는 전하지 않고 다만 부휴대사의 문하인 벽암 각성대사가 이곳에서 오래 주석하면서 인조 15(1637)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벽암스님은 일찍이 글씨와 군법에 능통한 스님으로 조선조 인조때에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원조국일 대선자라는 시호를 인조 임금으로부터 받았는데, 국일암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릇되었다. 그뒤 정인 스님이 해방 전후에 두차례에 걸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곳에는 부휴스님. 고한스님. 벽암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출처 : 법보종찰 해인사

 

 

 

 

 

 

●.지족암(知足庵)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산내암자이다. 원래 도솔암(率庵)이라 불렀으며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다.신라말에 희랑대사(希郞大師)가 이곳에서 머물며 최치원(崔致遠)과 시문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뒤 고종 30(1893)에 환운(幻雲)이 중건하면서 도솔천의 의역(意)인 지족으로 암자명을 개칭하였다. 인법당(因法堂)과 산신각 뿐이던 이 암자에 일타선사(日禪師)가 주석하면서 크게 증축하여 법당을 비롯하여 선원(禪院)사 요사채 등을 신축하였다. _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희랑대(希朗臺)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 선내 암자이다. 이 절은 신라말에 희랑()대사가 창건하여 수도하던 곳으로 희랑대라고 한다. 희랑대는 독성(獨聖)나반존자(那般尊者)의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유명하다.-출처:성보종찰 해인사

 

 

건칠 희랑대사 좌상

건칠 희랑대사 좌상은 높이 82cm로서 보물 제999호이다. 해인사 조사(祖師)였던 희랑대사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앞쪽은 건칠기법으로 뒤쪽은 나무로 제작한 이상은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큰편이다. 얼굴은 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파였으며, 자비로운

눈매. 우뚝선 콧날,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인지한 모습을 잘나타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초인 930년경 이전으로 추정되며, 진영 조각의 진수를 가장 잘묘사함으로서 10세기 중엽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진영조각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신라 진성여왕 3(889)에 거창에서 출생했으며 15세에 해인사로 출가해 세수 78세인 고려 광종7(966) 입적했다. 신라 헌강왕 당시 해인사에서 최치원과 시문으로 사귀었고, <엄경>에 정통해 화엄종의 대종장으로서 활약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스님에게 귀의했으며, 를 도와 고려왕조 성립에 기여했다. 해인사를 크게 중창시킨 스님은 해인사의 중창주이자 3대 조사로 추앙받고 있다._출처:불교신문 2659호. 위키리백과

 

 

.용탑선원(龍塔禪院)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44-19

 

이 절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조사(1864-1940)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 경성선사를 비롯한 문도들이 세운 절이다.

용성조사의 법명 용()자와 사리탑의 탑()자를 택하여 용탑선원(龍塔禪院)이라 칭하고 참선 정진하는 도량으로 건립하였다. 용성조사는 부처님의 정법을 전수한 명안조사로서 한문경전을 최초로 번역 출간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왜색화된 계율을 불교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하셨다.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과 해인총림 방장을 역임한 고암대종사께서 수십년간 주석 하다가 1988년 열반하였, 용성조사의 독립정신과 애국애족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국가차원에서 상당부분 지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 개축하였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2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가  암자 서쪽에 보존 되어있고 보물 제1855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권 72를 소장하고 있다._출처: 안내문

 

 

 

 

 

 

 

 

 

 

 

 

스승과 제자가 모두 독립운동가 였던 승탑과 비는 앞쪽의 석종형은 용성스님제자 고암선생 뒤편의 삼층석탑은 용성스님 승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