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無爲寺)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무위사 사적(無爲寺事蹟)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절의 이름을 관음사(觀音寺)라 했고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가 중창하고 갈옥사(葛屋寺)로 개칭한 뒤, 946년(정종 2) 선각(禪覺)대사 형미(迥微, 864~917)가 3창하고 모옥사(茅屋寺)로 개명하였다.
1430년(세종 12) 효령대군 등의 시주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극락보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1476년(성종 7)에 극락보전 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를 비롯한 벽화가 그려져있습니다. 1555년(명종 10)에 태감(太甘)선사가 4창하고 비로소 절의 이름을 무위사(無爲寺)로 되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도 화를 입지 않아서 웅장함과 화려함이 으뜸이며, 물과 육지에 떠도는 영혼을 달래 극락으로 안내하는 불교 의식인 수륙제를 봉행하던 수륙사로 지정되어 그 중심건물이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극락보전이 되었습니다.
1974년 극락보전 보수를 통해 29점의 내벽 벽화를 해체하여 보관하다가 2006년에 새로 성보박물관을 지어 그곳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습니다. 1975년에는 해탈문, 봉향각, 천불전, 미륵전 등을 중건하였고 1991년에는 산신각, 1995년에는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른다._출처:무위사
무위사 삼층석탑(無爲寺 三層石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2층 기단위에 탑신부와 상륜부 등을 잘 갖춘 삼층석탑이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 1석씩 구성되었으며, 몸돌에는 양면에 모서리 기둥(우주 : 隅柱)이 모각(模刻)되었다. 2∼3층 몸돌 높이를 급격하게 줄여 탑의 체감률이 높다.
삼층 석탑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을 띄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 탑의 조성 연대는 선각대사탑비(보물 제507호 946년)와 비슷한 고려 초기로 추정되며 탑의 높이는 396m 이다._출처: 무위사
무위사 극락보전(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13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극락보전은 1430년(세종 12)에 지어진 무위사의 대표 건물이면서 조선시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주심포 맞배지붕의 불전입이다. 내부에는 아미타부쳐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삼존좌상(아미타여래삼존좌상 보물 제1312호)이 봉안되었고 뒤 벽면에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1312호),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조성되었습니다.
극락보전 내벽사면은 아미타내영도, 오불도, 비천도 등 29점의 벽화로 장엄하였는데,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 되고 난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 49일 동안 이 법당을 들어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어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1974년 극락보전 보수를 통해 해체하여 성보박물관에 전시.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곡선 재료를 많이 쓰던 그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이 잘 이루고 있어 조선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받고 있다._출처 :국가유산청. 무위사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無爲寺 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2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의 주불인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우측에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 배치되어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흙으로 만들어진 데 반해,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중앙의 아미타여래상은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신체 비례를 지닌 결가부좌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좌측의 관음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쓴 채 왼쪽다리를 내린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우측의 지상보살상은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오른쪽 다리를 내린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 1476년 조성)와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와 조선초기의 불교미술양식이 결합된 수준 높은 작품으로서 조선초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_출처 : 무위사
이미지출처 : 국가유산청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벽화
(無爲寺 阿彌陀如來三尊壁畫)
국보 제313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뒤쪽 벽에 그려진 후불벽화는 1476년에 아산 현감을 지냈던 강질(姜耋)외 수십명의 시주로 해련(海連)선사 등이 조성되었습니다. 중앙의 높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서있는 뒤쪽에 6명의 나한이 두손을 공손히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의 새로운 양식을 반영한 조선전기의 불화로, 대부분 조선후기에 제작된 다른 아미타불화와 대조적으로 큰 가치가 있습니다._출처 : 무위사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보물 제1314호
백의 관음도는 아미타여래삼존 후불벽화와 함께 1476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후불벽 뒤에 그려진 관음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수작으로 손꼽힙니다. 관음보살이 왼손에는 정병, 오른손에는 버들가지를 들고 흰옷자락을 휘날리며 서서 오른쪽에 있는 노비구승을 바라보고 있으며, 우측 상단에 고려시대 문인 유자량이 쓴 낙산관음찬(洛山觀音讚)이 쓰여 있습니다._출처 : 무위사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無爲寺 極樂殿 內壁四面壁畫)
보물 제1315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극락보전은 총 31점의 벽화가 있었는데, 이중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백의관음도를 제외한 나머지 벽화 29점이 성보박물관에 옮겨져 보관. 전시되고 있다.
이중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는 모사도를 제작하여 극락보전 좌우 벽면에 봉안하였다. 성보박물관에 보안된 29점의 벽화를 “극락보전 내벽사면벽화”라고 지칭하여 일괄로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벽화의 소재도 아미타여래가 마중와서 서방극락(西方極樂)으로 인도해가는 아미타내영(阿彌陀來迎)을 비롯하여 보살. 공양화 등 매우 다양하다. 내벽사면벽화 중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는 “아미타삼존벽화(국보 313호, 1476년)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주로 18∼19세기에 그려졌다. 그런데 일부 떨어져나간 벽체 밑 부분 그림을 보면 세련된 필치와 선명한 색채가 돋보이는 15세기 벽화의 흔적을 엿볼수 있어 흥미롭다._출처 : 무위사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無爲寺 先覺大師遍光塔碑)
보물 제507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선각대사편광탑비는 선각대사 형미의 비석으로 946년에 세워졌습니다. 선각대사는 신라말의 명승으로 무위사에 8년간 머무르다가 918년에 입정하자 고려 태조가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의 이름을 “평광영탑”이라 하였습니다.
비는 비받침과 비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입니다. 비몸에는 선각대사에 관한 기록과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해서로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_출처 : 무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