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대원사
산청 대원사(山淸 大源寺)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길 455
548년(진흥왕 9) 연기(緣起)스님이 창건하여 평원사(平原寺)라하였다. 1685년(숙종 11)에 폐사된 옛터에 운권(雲捲)스님이 절을 짓고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으며 1890(고종 27) 구봉(九峰)스님이 낡은 건물을 중건하고 서쪽에 조사영당(祖師影堂), 동쪽에 방장실(方丈室)과 강당을 짓고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후 1948년 여수사건 당시 빨치산의 웅거를 우려한 진압군에 의해 다층석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1955년부터 만허당(萬虛堂) 법일(法一)스님이 1986년까지 근 35여년 동안 대원사를 중창하여 경남양산 석남사, 충남예산 견성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발돋움하게 하였습니다.
이미지출처:국가유산청
산청 대원사 반자(山淸 大源寺 飯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2호
반자(飯子)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의 일종으로 금고(金鼓) 또는 금구(禁口)라고도 한다. 절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일을 알리는데 사용한다. 산청 대원사 반자는 바깥지름 62cm, 너비 15cm 크기로 속은 일반적인 반자와 같이 비어 있다. 앞면에는 문양 없이 세 개의 돌출된 동심원을 그리고 있으며, 앞면에도 세 개의 돌출된 선이 둘러져 있는데 가운데 선위로는 반자를 매달수 있는 2개의 고리가 있다. 가장자리 일부분이 깨져 없어졌지만 지금도 절에서 사용하고 있다. 반자의 안쪽 면에 적혀있는 글을 통해 조선 숙종 27년(1701)에 만들어진 것을 확인 할 수 있어 조선중기의 불교문화를 이해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山淸 大源寺 多層石塔)
보물 제1112호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 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높이 5.5m의 탑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조선 정조 8년(1784)에 다시 세웠다. 1989년에 해체하여 복원하는 과정에서 58과의 사리와 사리를 넣은 보관함이 발견되었다. 탑은 두 개의 바닥돌 위에 여덟 개의 지붕돌을 올린 구조이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위층 바닥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 대신 사람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 새겨져 있으며, 네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있다. 대원사 다층석탑은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조각은 소박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비율이 뛰어나고 탑의 각부재가 완전하게 남아닜어 조선시대 석탑을 영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사천왕(四天王) : 동서남북 사방을 보호하고 불교와 부처의 말씀을 수호하는 네명의 신.
산청 대원사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山淸 大源寺 木造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산청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이 숙종 26년(1700)에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관음보살상이다. 보살상은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다리 사이에 대칭을 이루는 넓은 옷주름과 다리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가늘고 끝이 뾰족한 옷자락 등이 조선후기의 승려 조각가 색난의 조각기법을 이어받은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보살상은 대웅전이나 무량수전 등 부처를 모신 전각의 부처상 좌우에 있으나 관음보살은 예로부터 민중에게 인기 있는 신앙의 대상이어서 관음전, 원통전 등 별도의 전각에 모시기도 하는데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대원사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다.
보살상 안에서 금속제 보관함을 비롯하여 발원문, 다라니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을 통해 조성시기와 조성이유, 조성저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승려조각가의 계보와 불교 조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자료이다.
*다라니(陀羅尼):부처나 보살의 가르침이 담긴 산스크리트어 어구를 범역없이 그대로 적어 놓은 것.
복장유물(腹藏遺物):불상이나 불화 등을 조성하면서 내부에 넣은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