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김룡사
운달산 김룡사
(雲達山 金龍寺)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길 372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의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운달산 김룡사는 김룡사 사적서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雲達祖師)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김룡사는 원래 금선대(金仙坮)에 위치하고 조선 중기까지 운봉사로 불리었으며, 이후 17세기부터 각종 기록을 통해 김룡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옛날 문희(聞喜 : 지금의 聞慶) 부사로서 김씨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官)에 죄를 짓고 도망쳐 이 산에 숨었다가 우연히 신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용(龍)이란 아들을 낳았다. 가운이 또한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씨 어른(金長者)라 일컬었다. 하루는 큰 비 바람이 분뒤 그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어 간곳을 알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그 옛터와 섬돌이 절의 서쪽에 남아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선대(金仙臺)의 금자와 용소폭포의 용자를 따서 금룡사라 하였다는 설도있다.
조선 인조 2년에 혜종이 중창했으나 여러 차례의 화재로 불에 타면서 번창하던 건물이 줄어들었다. 특히 1997년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불전이 대부분 소실되어 남은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다.
효종과 숙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사찰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 사찰령 체제하에서는 전국본산 중의 하나였다.
일주문의 문 윗부분에 “홍하문(紅霞門), 아랫부분에 운달산 김룡사(雲達山 金龍寺)”라고 쓴 김진규(金奎鎭)가 쓴 글이다.
문경 김룡사 대웅전
(聞慶 金龍寺 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3호
이절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10년(588)에 운달조사(雲達祖師)가 처음 건립했다. 혜총선사(慧總禪師)가 조선 인조 2년(1624)에 중창했지만 1643년에 소실되어, 동왕 27년(1649)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고, 후불벽에는 2010년 보물로 지정된 김룡사 영산회괘불도가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다포계(多包系)의 건물로 외 3출목, 내 4출목으로 되어 있고 상부가구는 오량가이다. 천장은 3종류의 반자를 사용하여 재치있게 처리하고 있는 등 한국건축의 조형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미지 출처 : 국가유산청
문경 김룡사 영산회괘불도
(聞慶 金龍寺 靈山會掛佛圖)
보물 제1640호
숙종 29년(1703년)에 수원(守源)을 비롯한 6명의 회원이 제작한 괘불도(掛佛圖)로서, 오른손을 내리고 서있는 석가모니와 그를 둘러싼 많은 권속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한 모습은 당시 문경. 상주 등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괘불도 형식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불격(佛格)에 따라 크기에 차이를 두어 표현함으로써 권속 간의 위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본줄과 멀어질수록 작게하여 본존을 더욱 돋보이게끔 하였다. 불.보살을 제외한 인물은 바림질기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10대 제자와 사천왕. 팔금강은 세밀하고 능숙한 필치가 돋보인다. 이 괘불도는 17세기 경상도 지역의 괘불도 양식을 계승하는 한편, 이후 안동 봉정사 괘불도(1710년), 상주 남장사 괘불도(1788년)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영남지역의 영산회괘불도의 대표적인 작품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_출처 : 김룡사
문경 김룡사 석불입상
(聞慶 金龍寺 石佛立像)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55호
김룡사 석불입상은 자연석을 돌기둥 모양으로 깍아서 만든 돌부처이지만 입체감은 없다. 손모양, 옷주름 등 온몸은 얕고 투박하게 새겼으나 얼굴은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개인의 복과 마을의 안녕을 빌려고 만든 불상 즉 민불(民佛)에서 쉽게 볼 수 있다. 1725년 출간된(운봉사 사적)을 보면 석불입상은 서쪽의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 삼층석탑(문화재 자료 제668호)과 함께 풍수사상에 따라서 170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 되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민불처럼 투박한 모양으로 만든것이 특징이다. 석불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와 김룡사의 부족한 자맥을 보완하는 비보의 목적 등 이사적기에 기록되어 있어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_김룡사
문경 김룡사 삼층석탑
(聞慶 金龍寺 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67호
김룡사 삼층석탑은 김룡사 경재 응진전의 동북쪽 상부의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석축 위에 위치하고 있다. 1709년에 지덕(地德)비보를 위해 석불입상과 함께 조성된 비보사탑(裨補寺塔)이다. 비보사탑은 대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조선후기에 풍수적 비보를 위해 김룡사처럼 탑과 불상을 동 시기에 함께 조성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이 탑의 전체 높이는 2.85cm로, 단층 기단부와 3층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1층 탑신석 남면에는 삼층석탑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방형의 틀을 파서 불상을 새겼다. 2층 탑신부 이상은 탑신석 체감이 적어나, 옥개석 체감은 매우 큰 편으로 일정한 체감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늬 너비가 좁은편이서 세장한 느낌이 든다.
김룡사와 관련된 자료중 <김룡사사적>에 의하면 1709년 삼층석탑과 석불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을 확인 할수 있다.
김료사 삼층석탑은 양식적으로 그 가치가 미미하지만, 조선후기 석탑의 연구가 거의 전무한 사황에서 절대적 편년의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 비보사찰의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_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