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불영사
불영사(佛影寺)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1370년(공민왕 19) 유백구(柳伯儒)가 지은 천축산불영사기(天竺山佛影寺記)에 의하면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고하며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가 전한다.
즉 의상대사가 동해로 향하고 있는데 계곡에 여린 오색 서기(瑞氣)를 발견하고 가까이 가보니 연못 안에 9마리 용이 있었다. 이에 도술로 가랑잎에 화(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갑자기 물이 끓어올라 용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치므로 절을 지었다고 한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다시 불영사를 방문 할 때 선사촌(仙槎村)에 이르렀는 데 한 노인이‘부처님이 돌아오시는 구나’하면서 기뻐하였다. 그 뒤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불영사를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하여 불귀사(佛歸寺) 라고도 불렸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며, 1396(태조 5)에 화재로 인하여 나한전(羅漢殿)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던 것을 이듬해 소설(小雪)이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영산전만 남고 모두 전소된 것을 1609년 성원(性元)이, 1701년에는 진성(眞性)이, 1721년 천옥(天玉)이 중건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응진전(보물 제730호), 극락전,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응향각(凝香閣)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양성당 부도, 불영사 사적비 등이 있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應眞殿)
보물 제730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응진전은 석가모니부처와 그의 제자를 모신 전각이다. 이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고 아담한 다포계 홀처마 맞배기와집이다. 기단은 자연석을 허튼층 쌓기하였으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출입을 위한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으며, 좌.우협칸에 벽을 두고 벽 위쪽에 작은 광창을 달았다. 좌.우 하인방과 기둥에는 툇마루를 두었던 흔적이 있다. 공포의 구성은 내.외 2출목(內外二出目)이다. 일반적으로 맞배지붕 건물은 주심포계이며, 공포도 앞.뒤면에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특이하게 이 건물은 건물 4면에 모두 공포를 배치하였다. 응진전은 1984년 해체. 보수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1578년(선조 11), 1629년(인조 7), 1666년(현종 7), 1716년(숙종 42)과 1843년(현종 9)등 여러 차례보수 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상량문에 영산전(靈山殿)으로 적혀 있어서 어느시기에 석가모니의 제자들도 함께 봉안되면서 응진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수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_출처 : 불영사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
보물 제1201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대웅보전은 불영사의 중심법당으로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이다. 이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기와집 이다. 기단은 다듬은 돌을 허튼층 쌓기하였으나 가구식 기단과 유사하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좌.우협칸에 이분합문을 달았고 우측면 앞쪽 협칸에는 한짝 세살문을 두었으며, 배면 어칸에는 이분합문을 설치하였다. 공포의 구성은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이다.
대웅보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2년(선조 35) 중건하였으나 1720년(숙종 46)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중건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기단 밑 좌.우에 돌거북(石龜)을 놓아 건물을 받들게 한것은 특이한 구상으로, 이는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곳(火山)이어서 수신(水神)인 거북으로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다포계의 구조가 건실하고 각 부재의 조각도 깔끔하며, 특히 단청은 금단청 계열로 격조 높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_출처:불영사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불영사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3.21m이다. 기단부는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撐柱) 1주가 모각되어 있다. 그리고 상.하층 기단 갑석 하부에는 부연이 없다.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별도의 돌로 만들었다. 탑신석의 각 면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처마는 수평이고 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는 노반 없이 여러 부재가 놓여있다.이 석탑은 원래 황화실 옆 동쪽에 일부 무너져 있었는데,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석탑은 규모는 작으나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탑이며, 기단 갑석 하부에 부연이 없는 등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 초로 추정된다._출처 : 불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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