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본 암자

선운사 도솔암

승학2 2021. 10. 10. 23:36

선운사  도솔암(兜率庵)

전북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 294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 선운사. 도술사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곳에 신라왕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여 창건사항은 정확히 알수 없지만,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도솔)이라는 이름등은 도솔암이 미륵신앙의 배경하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수 있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중사(兜率山仲寺)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에는 절이름을 중사라고도 불렀음을 알수 있다. 조선후기에 들어오면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된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스님이 중창한 뒤 1694, 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하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서 1658년 해인(해인)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북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하였다. 이처럼 각기의 독자적인 암자였던 것이 근세에 와서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운전.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솔암내원궁에는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어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1200호, 나한전과 내원궁은 각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_출처 선운사.

 

 

 

선운사 진흥굴(禪雲寺 眞興窟)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사자암앞에 있는 좌변굴이 진흥굴로 불리게 된 지명 유래담이자 중애암, 도솔암의 창건과 관련한 사찰 연기 설화이다. 삼국시대 때 불교가 국교처럼 성행했던 신라에서 제23대 법흥왕의 태자로 탄생한 아사달은 어릴 때부터 불도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부친의 대통을 이어 왕위에 오르지 않으면 안될 신라의 법전에 따라 부득이 24대 왕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일에는 뜻이 없고 오직 불도에만 힘써 오다가 끝내는 왕위를 물려주고 평소 많은 시주와 관심을 가져온 선운사로 수도의 길을 떠났다.

진흥왕은 왕위를 떠나올 때 왕비와 사랑하는 중애공주를 데리고 선운사를 찾아 삭발하고 승려가 되었다. 왕이 맨 먼저 찾아온 곳은 지금 선운사의 사자암 앞에 있는 석굴로서 좌변굴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후세에 이 굴의 명칭을 진흥굴이라 고친 것은 진흥왕이 친히 거처하며 수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흥왕은 승려가 된 후 이름을 법운자라 칭하고 사랑하는 공주 중애를 위하여 중애암, 왕비의 별호인 도술의 이름을 따서 도술암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_출처”다음백과

도솔암 장사송(兜率庵 長沙松)

천연기념물 제354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산97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長沙縣)에서 유래하여 붙은 이름이다. 옛날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진흥굴 앞에있다하여 진흥송이라고도 불린다.

장사송의 수령은 약600년, 높이는 약23m, 가슴 높이 둘레는 3m에 동서남북 17m로 가지가 펴져 있으며, 지상 40cm쯤에서 가지난 흔적이 있어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인 반송(盤松)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무즐기가 지상 2.2m 높이에서 크게 두갈래로 갈라져있고 그 위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채살처럼 퍼져 있는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며 보기 드물게 오래된 소나무로 보존 가치가 인정되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사송의 옆에 있는 돌 비석의 뒷면에 장사녀(長沙女)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장사녀는 고려사(高麗史)등에서 전해지는 백제 가요 선운산곡(禪雲山曲)에 나오는 인물이다. 선운산곡에서 장사녀는 선운산에 올라가 정역(征役) 조세(租稅)와 부역(賦役)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노래를 불렸다고 전해진다._출처:선운사

 

 

 

 

 

 

도솔암 나한전(羅漢殿)

문화재 자료 제110호

 

아라한을 모시는 곳이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인 응공(應供)과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인 응진(應眞)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나한전은 응진전(應眞殿)아라고도 한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 불상과 16나한상이 안치돼 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보살상과 달리 나한상에는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개성이 자유 분방하게 표현됐다. 전설에 의하면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물리치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을 모셔와 이곳에 안치하였더니 이무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무기가 뚫고간 바위 위에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_출처 선운사

도솔암 윤장대(輪藏臺)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윤장대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는 성보입니다. “석문정통” 탑묘지에 따르면 사찰에 처음 윤장대를 설치한 것은 중국 양(梁)나라 때이며, 선혜대사(善慧大士)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경전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 하였습니다.

불자님들께서는 윤장대를 한번 돌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하시고, 두 번 돌리며 부처님께서 살아가신 길에 대해 생각하시고, 세 번 돌리며 나와 모든 중생, 영가님들이 업장소멸 해탈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_출처 : 선운사 도솔암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 294(삼인리618)

 

조선 후기 선운사 도솔암의 지장보살을 안치한 불전으로 나한전 뒤의 가파르고 좁은 돌계단 위쪽 천인암(千仞岩) 바위 위를 상도솔암이라고 한다. 이중 “두솔암내원궁(兜率庵內院宮)이라 쓰인 현판이 있는 곳이 선운사 내원궁이다. 내원궁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이 안치 되어 있다.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兜率庵 金銅地藏菩薩坐像)

보물 제280호

 

지장보살은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아 그가 죽은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모든 중생,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이를 위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미 올랐으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기도 했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과는 달리 도솔암 내원궁에 모셔져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 비율이 균형적이며, 외관상 눈에 띄는 점은 고려 후기 지장보살의 특징인 두건을 쓴 모습이다. 양쪽 귀에는 활짝 핀 꽃무늬 귀걸이를 착용했다. 갸름한 얼굴에 초승달 같은 눈썹, 가늘고 긴 눈, 오똑한 코, 오밀조밀한 입 등 섬세한 이목구비가 우아한 인상을 준다. 화려한 목걸이등 장신구들은 고려 귀족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은 설법을 하는 손 모양으로, 아미타 구품인 중 하나이다. 왼손에 든 법륜은 언제 어다서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을 이미한다. 이 불상은 고려후기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의 최고의 걸작이다.

 

 

 

선운사 동불암지마애여래좌상(禪雲寺東佛庵址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200호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신체 높이가 약15.7m, 무릅 너비는 약8.5m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마애불의 양식으로 보면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성시기는 알수 없어나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있다. 마애불의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들은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법당의 부처를 모신 자리위에 만들어진 집모양)이 있었던 흔적이다. 가슴아래 새겨진 복장<불상(佛像)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 은, 칠보(七寶)와 같은 보화(寶貨)나 서책(書冊)따위를 넣음>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복장안에 보관된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은 망한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기록을 꺼내 보려다 천둥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대목만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한다. 100여년 후 동학농민혁명이 움트던 1892년에 동학접주 손화중이 그기록을 무사히 께내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을 엿볼수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_출처 : 선운사

 

선운사 용문굴(禪雲寺 龍門窟)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선운사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굴이다. 577년(백제 위덕왕 24)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아다고 한다. 그런데 와서 보니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더라는 것이다. 그 용은 검단선사에 의해 쫓겨났고, 급히 도망을 치다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용문굴이다. 해발 336m의 선운산에는 용문굴 외에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다.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등을 두루 돌아보는 산행이 일품이다. 그리 힘들지 않고 약 3시간 정도 걸리지 않는다. 오전에는 천마봉에 오르면 도솔암 마애불에 해가 들기 시작하는데, 앙다문 부처의 입이 빛을 받아 미소짓는 것처럼 보인다. 해거름 녁에는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그만이다-출처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