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표충사
표충사(表忠寺)
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호국정신이 깃든 절이다. 신라 무열왕 원년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지었는데 원래는 죽림사(竹林寺)라고 하였다. 이 절에서 826년에 인도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다섯 색깔 구름을 본 뒤 3층 석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당시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을 치료하려고 신령스러운 산과 약수를 찾아다니다가 죽림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영정약수를 마시고 완쾌됬다. 이때부터 “신령한 약수가 있다고 하여 영정사(靈井寺)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 충렬왕 때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국사(一然國師)가 승려 1000여명을 모아 불교를 크게 일으키기도 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의 고향인 밀양 무안에 있던 사당 표충사(表忠祠)를 1839년 영정사로 옮겨오면서 붙였다. 사당 표충사(表忠祠)는 사명, 서산, 기허등 임진왜란때 활약한 세 대사를 모신곳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표충사에 있는 중요 문화재로는 청동향로에 무늬를 새기고 그속을 은실로 메워 장식한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表忠寺靑銅銀入絲香垸)은 동양에서 오직 하나뿐인 국보 제75호 이다.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보물 제1944호)이 있다. 표충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사명대사가 입었던 가사와 장삼(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등 사명대사의 유품 300여 점도 보존돼 있다. 경지내에는 대광전을 비롯한 20여 동의 전각과 표충 서원이 있다.
승병 ;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
사액(賜額) :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림.
경내지 : 불교의식 및 승려수행등을 위한 전통 사찰에 속하는 토지.
표충사 수충루(表忠寺 酬忠樓)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로 들어서는 두 번째 해탈의 관문인 수충루(酬忠樓)는 충혼을 상징하며 표충사당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표충사 편액이 걸려있는 수충루를 지나면 사명대사 유물관을 비롯한 표충사당 표충서원 설법전등이 한눈에 들어온다._출처 : 표충사
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表忠寺 銀入絲 香玩)
국보 제75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4-9
향완은 불전(佛殿)에 향을 피우는 용기로 향로라고도 하며,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 졌다.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은 가느다란 은실을 굽다리 접시 모양의 향완에 새겨 넣는 방법으로 만들어 졌눈데, 이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향완의 모습이다.
이 향완은 조선 선조가 사면대사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7년에 발견되었으며, 57자로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는 제작 연월일, 발원, 발원자, 무게가 기록되어 있어며, 함은 향완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받침 안쪽에는 “창녕북면 용흥사(昌寧北面 龍興寺)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원래 이 향완이 표충사가 아닌 창녕의 용흥사에 있었음을 알수 있다. 언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제작 연대는 고려 명종 7년(1177)으로 우리나라 향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일본의 법륭사에 있는 금산사 향로보다 1년 앞서 제작되었다. 높이는 27.5cm, 입구지름은 26.1cm이다.
명문 : 금석이나 그릇에 새겨 놓은 글.
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四溟大師의 金襴袈裟와 長衫)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
임진왜란 때 승려로 조직된 군대인 승병을 일으켜 왜군을 크게 물리친 사명대사가 입었던 가사와 장삼은 표충사 유물관에 있다. 가사(袈裟)는 승려가 장삼위에 왼쪽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옷으로, 금실을 넣고 짠 베로 만든 것을 “금란가사”라고 한다. 장삼(長衫)은 승려의 웃옷으로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 옷이다.
사면대사의 금란가사는 크기가 가로 260cm, 세로 80cm이고, 가장자리에 황금색 중국 비단이 좁게 덧대어 있다. 부식과 탈색이 심해 1983년 일부를 손질하고 보존 처리한 상태이다, 무명으로 만든 장삼은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으며 총길이는 144cm, 상의 길이는 92cm이다.
이것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초 승려들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표충서원(表忠서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2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임진왜란때 승병으로서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당 3대사의 충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원래는 사당이었던 것을 조선 헌종 5년(1839)지금의 위치인 영정사 안으로 옮겨 표충서원이라 이름짓고 절의 이름 또한 표충사로 고쳤다.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7년 절을 다시 지을 때 표충서원 건물도 함께 복원 하였다. 그러나 일부 승려들이 절 안에는 서원이 있을수 없으며 부처님과 3대사의 영정이 함께있는 것은 더욱 안되는 일이라 반대하였다. 결국 1971년에 표충서원을 절의 서쪽에 위치한 팔상전으로 옮기고 서원건물을 팔상전으로 대체 하였다. 현제의 건물 구성 및 배치는 원래의 형태를 찾아볼수 없으며, 일반적인 서원의 구성 및 배치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_출처 : 표충사.
표충사 삼층석탑(表忠寺 三層石塔)
보물 제467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4-9
이 탑은 통일 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7.7m의 3층 석탑이다.
1995년의 해체, 보수때에 나온 많은 유물은 탑과 표충사의 역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탑은 기본적으로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은 단층이고 지붕돌의 주름도 한 개가 줄어든 네 개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에는 여러 장식과 함께, 아직도 찰주가 높이 솟아 있고, 지붕 모서리에는 작은 풍탁을 달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다. 지붕돌에는 근년의 것이긴 하지만, 2개의 풍탁이 달려 있다. 기단과 지붕돌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늦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균형있는 전체적 비례와 우아한 모습은 같은 시기의 석탑 중에서도 뛰어나다.
우화루
표충사 대광전(表忠寺 大光殿)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31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대광전은 표충사의 중심 불전(佛殿)으로 가운데 있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藥師佛)을, 서쪽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각각 봉안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지만, 전란 등으로 불타버린 것을 1929년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八作)다포계(多包系) 양식이다. 기둥머리의 용머리 조각과 추녀의 장식들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과 기둥 위 장식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배치되어 균형미를 잘 살리고 있다. 건물 네 귀퉁이에는 추녀가 처치는 것을 막기 위해 4개의 기둥(活柱)을 따로 두어 추녀를 받치고 있다. 4개의 기둥 중 앞쪽의 기둥은 팔각형인 데 반해 뒤쪽의 기둥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매우 특이하다. 건물을 받쳐주는 받침돌(基壇石)은 잘 다듬어져 있으며, 주춧돌(礎石)역시 다듬은 돌로 되어 있어 건물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건물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표충사 관음전(表忠寺 觀音殿)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관음전은 천수관음보살도를 모셔놓은 법당이며, 아미타불의 좌보처로서 아미타불릐뜻을 빌어 대자대비(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삼아 중생을 보살피고, 극락정토(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이들을 인도하는 보살이다. 관음전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상징하는 42수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좌우보처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응립해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1930년 조성된 천수천안관세음보살탱화가 모셔져있다.__출처 : 표충사
표충사 명부전(表忠寺 冥府殿)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43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명부전은 저승 유명계(幽明界)를 사찰 속에 옮겨놓은 법당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본존으로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표충사 경내에 관음전과 나란히 있는 이 명부전의 건립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대에 복구 되지만 숙종대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주지 도한(道閑)등에 의해 다시 곧바로 복구가 이루어진다. 현종대에는 월파선사(月坡禪師)가 명부전 자리를 서산(西山), 송운(松雲), 기허(騎虛) 삼대사(三大師)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影堂)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지금 전하는 것은 1929년에 복원한 것을 1989년에 개축한 것이다.
표충사 만일루(表忠寺 萬日樓)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42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이 H자형의 독특한 건물은 1860년(철종 11)에 당시 방장(方丈) 월암상인(月庵上人)이 조성한 것이다. 48칸의 선실을 108평의 부지에 지어 동림고사(東林古社)라 이름하였는데, 혜원법사(慧遠法嗣)의 유풍을 받드는 뜻을 담고 있고 불교의 48원(願)과 108번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곳은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대중들의 정진 장소로 쓰였으며, 무량수각(無量壽閣) 혹은 서래각(西來閣)으로 편액되어 선방(禪房)으로 사용되었다. 192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9년에 중건하였고 지금의 것은 1992년에 보수된 것이다. 중건을 계기로 현판도 영남제일선원(嶺南第一禪院)으로 새로 걸었다. 이곳은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宗正)을 역임한 효봉대종사(曉蜂大宗師)께서 말년을 보내시고 열반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