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화순 운주사

승학2 2021. 1. 29. 20:47

운주사(雲柱寺)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 천불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이절의 창건 연대는 알수 없어나 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세웠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고려승 혜명(惠明)이 천여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을 970년(광종 21)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惠明)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면 운주사는 고려초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 절로서 천불천탑과 석불 2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84년 제1차 발굴조사 때 “홍치 8년(弘治八年)”이라고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1495년(연산군 1)에 네 번째 중수가 있었던 사실을 알수 있으므로 조선초기까지는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유재란으로 폐사된 것을 1800년경에 설담자우(雪潭自優)가 땅에 묻힌 불상과 무너진 불탑을 세우고 약사전 등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1984∼89)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어 그 결과 운주사는 늦어도 11세기초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비구니가 수도하는 절로 요사채 종각 그리고 새로 신축된 대웅전 지장전 승방등이 있으며 주변에 91구의 석불(완형50구)과 21기의 석탑등이 흩어져 있다. 이 거운데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9층석탑(보물 제796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불(臥佛)등이 대표적이다._출처 : 다음백과

 

 

 

 

 

 

 

연장바위 와 석재군

이 바위는 운주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다. 천불과 천탑을 하루 만에 세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하여 석공들과 동자승이 천불천탑을 하루만에 세우고 있었다. 이때 일하기를 싫어한 동자승이 일부러 닭 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날이 샌줄 알고 연장을 이 바위에 두고 갔다고 하여 바위 이름을 “연장바위”라 한다. 연장바위 앞에는 운주사 안 여기저기에 있던 석재 중 원반형 옥개석 1개와 활추초석 1개 등을 모아 놓았다.

 

활주초석 : 건물 모서리에 설치된 보조기둥인 활주의 기초가 된는 석재.

화순운주사 구층석탑(和順雲住寺 九層石塔)

보물 제796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운주사 골짜기의 남쪽 첫 입구에 위치한 석탑으로 일반적인 탑과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거대한 암반 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다. 탑신부에 그 안에 꽃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었다. 특히 하신부에 사선이 새겨진 지붕돌은 납작하고 넓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형식을 하고 있다.

운주사의 여러 석탑 중에서 제일 높지만 상대적으로 지붕돌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군

운주사 입구 9층 석탑의 동쪽에 있다. 암벽은 높이 약 8m 너비 약 20m이며 수직 단애면에 대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셨다. 현재는 좌불 1구와 입상 5구가 있는데 입상 1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좌대를 갖추고 있다.

석불군은 두 손을 합장한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하여 나머지 불상이 배치되어 있다. 1984년 발굴 조사시 맨 오른쪽 불상대좌 뒤편에서 8∼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여래 입산이 출토 되었다.

화순운주사 5층석탑(和順雲住寺 五層石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석불군 가 있는 암벽위에 자연석을 옥개석으로 한 5층 석탑이 있다. 못생긴 탑은 “거지탑”, ”걸레탑”, “동낭치탑”이라고 한다. 돌을 다듬치 않고 본래 모양대로 갖다가 탑몸에 앉혀 자연미와 파격의 미를 함께 갖춘 탑이다.

세계적인 석탑으로 찬탄해 마지않은 그야말로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탑이다. 거륵하고 존엄한 부처님의 상징물을 이렇듯 가장 밑바닥 계급 하층의 모습으로 표현하여 이름도 걸레탑 거지탑 동야치탑이라 부르니 그 이름이 자연적으로 민가에서 갖다붙인 이름이라 할지언정 궁합이 그도록 딱 맞는 천생배필은 없을 것이다.

석불군

이 석불군은 운주사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데 석불군 “가”와는 10m 정도 떨어져 있다. 석불군이 있는 암벽은 높이 5m  너비 25m로 석불군 “”보다 규모가 작으며 암결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 높이 475m의 대형 입상인 주존불이 있으며 주존불 좌우에 입상 7구의 협시불이 배열되어 총 8구의 석불로 되어 있다.

석재군

운주사 안 여기저기에 있던 석불의 불신 및 불두와 석탑의 면석 옥개석 상륜부 등 분실될 우려가 있는석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화순운주사 칠층석탑(和順雲住寺 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상자모양으로 다듬은 기단위에 원형의 1단괴임을 만들었고 그 위에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탑신부가 자리 잡고 있다. 초층과 2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되었고 각면의 모서리에는 기둥형식이 조각되었다. 3층 이상의 탑신은 모두 1매석이며 각 면에는 우주가 모각되었다. 각층의 두툼한 지붕돌은 정교하게 잘 만들어 졌고 추녀와 처마가 직선형으로 표현되었다. 상륜부는 유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한 신라 전형적양식을 계승한 우수한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9.6m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순운주사 쌍교차문 칠층석탑(和順雲住寺 雙交叉紋 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7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이 석탑은 운주사에서 유일하게 광배를 갖춘 석불좌상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 탑 역시 높고 큼직한 방형의 기단석 위에 1단의 방형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탑신부를 얹었다. 비교적 안정되고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석탑의 외형은 신라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각층 탑신석에 특이한 쌍교차문(XX)과 측면의 마름모꼴(◇)의 형태를 장식하는 등 국내석탑에서는 그 유래가 없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시기는 고려시대이다.

화순운주사 광배 석불좌상(和順雲住寺 光背石佛坐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광배석불좌상은 운주사 석불 가운데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가 표현된 불상이다. 사다라꼴 판석에 조각된 광배는 두광과 신광의 구분이 없고 불신 주변으로 선각에 의한 화염문을 음각 하였다. 광배는 고부조된 불상에 비해 두께가 얇은 편이다. 불신은 광배에서 약간 도드라지게 표현되었으며  수인(손모양)과 코  눈썹  귀는 양각 되었다. 전체적으로 상호는 원만상이며 눈에 비해 약간 높게 표현된 눈썹과 기다란 코  두툼한 입술을 표현하고 있다. 귓바퀴가 묘사된 큰 귀는 눈썹 부근에서 입술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운주사 광배석불좌상은 석불군 가운데 드물게 광배가 표현돼 있어 불상으로서의 가치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제작 시기는 양식적인 불상 표현으로 볼 때 고려시대로 추정한다.

석불군

암벽 왼쪽에는 사각형과 원반형 대좌에 불상 4구가 세워져 있다. 중앙에는 사각형 연화 대좌를 갖춘 불상이 있고, 그 좌우로 입상의 석불이 배치되었다. 중앙의 석불은 두손의 형태는 없어졌으나 다른 불상보다 입체감 있게 묘사되었는데 얼굴에는 긴 귀와 코의 흔적이 있으며 머리에는 육계가 있고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의 법의를 걸쳤다. 또 복련(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이 묘사된 사각형의 대좌 위에 오른발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쪽 허벅다리 위에 놓은 자세의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좌우 석불은 다른 불상군의 석불과 마찬가지로 판석을 이용한 듯 얕은 부조와 선각으로 묘사되 있다.

석불군

운주사 동쪽 산등성이의 암벽 좌우에 위치하는데, 오른쪽에는 불두 5편 석불 입상 3구가 있다. 이중 가장 큰 석불 입상은 세조각으로 파손된 것을 1993년 보수하여 세워 놓은 것이다.

화순운주사 수직문 칠층석탑(和順雲住寺 垂直紋 七層石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운주사 동쪽 산중턱의 높직한 암반위에 있는 석탑이다. 지대석 등의 별다른 시설없이 암반위에 방형단을 만들어 기단부를 대신하고 탑신부를 얹었다. 모서리 기둥 사이의 면석에는 가늘게 층에 따라 7∼11선의 수직 종선문(縱線紋)을 음각하였느데 각 층이 똑 같은 형태이다. 각층의 옥개석 하면에는 받침을 생략하고 대신 마름모꼴을 음각하였다. 현재 6층까지 탑신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7.2m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화순운주사 석조불감 앞 칠층석탑(和順雲住寺 石造佛龕 앞 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석조불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석탑이 큰 방형 지대석을 설치하여 기단을 대신한 것과 달리 규모가 작고 낮은 지대석 위에 1단 괴임을 마련하여 탑을 세웠다. 옥개석의 층급 받침은 약하며 상면에 탑신괴임이 생략되었다. 넓고 평평한 옥개석과 그 윗면 네 귀퉁이의 우동마루가 예리한 선을 이루지 않고 두툼하게 표현된 것은 백제계 석탑에서 나타나는 기법이어서 주목이 된다. 또한 옥개석의 폭과 탑신 높이의 체감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라 추정된다.

화순운주사 석조불감(和順雲住寺 石造佛龕)

보물 제797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그 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단독으로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인 예이다. 운주사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 중 석조불감은 골짜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앞뒤로 각각 탑이 1기씩 있어 야외 불당의 주존불 구실을 하는 배치를 보이고 있다. 불감은 팔작형태의 지붕을 갖추고 그 위에 용마루 등이 조각되어 있는 목조 건축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감실 내부는 남북으로 통하게 하여 불상 2구가 등을 맞댄 형태로 배치하였다. 이들 좌상은 단순화된 형태를 보이는데  경직되고 도식적인 평면화 된 표현은 고려시대의 지방화 된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사례를 찾을 수 없으며 등을 맞댄 쌍배불상 또한 유래가 없는 특이한 형태로 주목된다.

화순운주사 원형다층석탑(和順雲住寺 圓形多層石塔)

보물 제798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원형석탑이다. 탑의 구성은 하나의 돌로 된 거북이 모양의 지대석 위에 두툼한 원형 단을 만들고 탑을 세웠다. 기단 면석은 5매석을 조립하여 8각을 이루고 원형의 갑석에는 연꽃을 선으로 표현하였다. 원형의 탑신과 옥개석은 모두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있다. 이색적인 면이 보이는 이 원형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5.8m 이다.

 

 

 

화순운주사 대웅전 앞 다층석탑(和順雲住寺 大雄殿 앞 多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0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운주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탑신은 4층의 옥개석까지 남아 있고 그 이상 부재의 존재 여부는 알수 없다. 지붕돌인 옥개석 상부는 일반적인 탑의 곡선 형태가 아니고 전탑과 같은 3단의 층급형으로 이뤄진 모전석탑 유형이다. 즉 돌을 작은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것이아니라 통돌을 계단형으로 깍은 것이다. 특히 호남지방에서 드문 예로서 각층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에서는 가벼운 반전이 있으며 강진 월남사지 모전탑과 비교된다. 전체 높이는 3.23m이며 제작시기는 고려시대이다.

화순운주사 원반석탑과 사층석탑

원반형 석탑과 사층석탑은 대웅전 뒤편의 원만한 경사지에 있다. 원반형석탑은 원래는 원형 석탑이지만 사각형 탑의 면석들이 조립되어 원형을 알수 없다. 현재의 상태로 보아서는 기부단와 1층 탑신에 다른 석탑부재를 사용한 듯하다. 석탑의 기본 구조는 단층기단 위에 탑신부를 만든것인데 4매의 판석으로 짜인 기단 중석은 남면(南面)의1매가 없어졌다. 운주사에는 이 탑 이외에도 몇기의 원형탑이 있으나 모두 서로 형태가 달라서 주목된다.

사층석탑은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단층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탑신부를 올린 형식의 탑이다. 이 석탑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부재를 혼합한 흔적이 있어 본래의 석탑과는 달라졌음을 알수 있다.

화순운주사 마애여래좌상(和順雲住寺 摩崖如來坐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5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마애불은 지금의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40m 떨어져 있는 거대한 바위의 벼랑에 새겨져 있다. 육계는 두툼하게 솟아 있고 희미한 눈썹과 기다란 코는 양각으로  귓바귀는 음각으로 표현되었다. 손을 모우고 있어 이는 운주사 석불의 대부분과 같다. 좌대는 8개의 연꽃무늬가 복련으로 음각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지 않고 무릅 위쪽까지만 음각 선문으로 표현하였다.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운주사 석불군 가운데 유일한 마애불이며  광배나 좌대를 표함한 전체 높이가 5.16m로 규모가 크다.

 

유계 : 불상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의 혹

복련 :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

광배 : 불상의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뒤에 빛을 나타낸 의장

좌대 : 기물을 받쳐 얹어 놓는 대

화순운주사 발형다층석탑(和順雲住寺 鉢形多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2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18

 

대웅전 뒤편에 있는 탑으로 매우 독특한 모양의 탑이다. 1층부터 4층까지의 형태가 주판알 같은 모습이다. 현재는 석괴가 4석이나 “조선고적도보”에 따르면  원래는 7석의 괴석 얹혀 있었다고 한다. 아래쪽부터 사각형과 원형  원구형이 중첩된 평면인데도 조화가 잘된다. 독특한 형태의 석탑이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고 기발한 조영기법을 보이는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석탑이다.

석불군

법당에서 약 20m 떨어진 공사바위 아래에 있는 암벽 남쪽에 있다. 암벽은 높이15m  너비 20m로 마애 여래좌상이 새겨진 암반과 연결되며 중앙부와 하단을 깍아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감실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본불은 상대  중대  하대를 모두 갖추었고 대형 석불입상은 왼팔만 가슴에 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원래는 다른 석불군과 마찬가지로 암벽아래에 좌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입불을 배치한 석불군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군에는 암벽 방향이 같은 좌상과 그 오른쪽에 소형좌상 1구 중앙에 구멍이 있는 불두의 조각과 서로 어깨를 기댄 입상 2구가 있다.

和順 雲住寺 거북바위 五層石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6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거북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암반위에 1매의 방형판석을 지대석으로 삼고 탑신부를 세웠다. 초층 탑신은 4매 판석으로 짜맞추었는데 각 면의 귀퉁이에 우주가 정연하게 각출 되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뚜렷하며 상면에 탑신괴임이 생략되었다. 상륜부는 복발형의 부재가 안치되고 그 위에 보주가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치석의 기법이나 각 부재의 비례가 안정된 탑으로 제작시기는 고려시대로 보인다. 전체 높이는 5.57m이다.

和順 雲住寺 거북바위 交叉紋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9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거북바위라 부르는 다소 경사진 암반을 원만하게 다듬어 기단부 없이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탑신부를 세웠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각면의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되고  면석 중앙으로 보조 우주가 하나씩 얕게 표출되었다. 2층에서 7층까지 탑신 4면에 X자 문이 새겨져 있고 옥개석 상면의 우동마루가 두툼하게 튀어나오는 등 한국석탑에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 탑이다. 이러한 기법은 모두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 것이며 고려시대에 나타난 백ㅈ계 석탑 특징으로 전체 높이는 7.17m이다.

석불군

서쪽 산기슭에 있는 와불로 가는길 중간의 암벽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 산자락에는 석불군이 다섯이 있는 것에 비해 이곳에는 석불군이 한 곳 뿐이다. 암벽의 크기는 높이 5m  너비 15m이고  공간의 넓이는 일부 암반이 떨어져 나가 3mX4mX2m이다. 이는 너무 깊게 암벽을 감실을 조성하려다 상부 암반이 무너져 내린 결과로 추정된다. 암벽에는 높이 4m 지점에 지름 1m 정도의 암벽을 다듬은 흔적이 보여 석불군 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대형 불상을 모시려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중앙에 좌상  그 주위에 입상불이 배열되어 있다. 불상은 9구이나 대좌는 12이다. 이로보아 불상 3구가 다른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和順 雲住寺 臥形石造如來佛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3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운주사 계곡 서쪽 산 정상의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 2구로, 일명 와불(누워 있는 불상)이라고도 한다. 좌상의 대불은 어깨의 폭에 비해 양 무릎 사이의 폭이 너무 넓어 인구(사람의 형상)의 균형을 잃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큰 불상에 속한다. 작은 불상인 입상의 수인(손 모양)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것 같으나 어색하고 사실적이지 않다. 또한 옷 주름은 수직선과 사선으로만 처리하여 매우 단순하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롯밤 사이에 천불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한다. 이두 석불은 운주사의 많은 석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며, 크기도 각각 12.7m와 10.3m나 되는 국내에 있는 석불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하여 베푸는 인상(印相).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

                                     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물껀주는 시늉을 하고 있다.

여원인(여원인) : 모든 중생(衆生)의 소원을 이루어 줌을 보이는 결인(結印). 오른손의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여 드리우는 형상이다.

 

칠성바위 앞 칠층석탑(和順雲住寺 七星바위 앞 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1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운주사 계곡 서측 산록의 칠성바위라 불리는 곳의 큰 암반위에 서있는 탑이다. 지대석이나 기단부 등의 별다른 시설이 없이 자연 암반위에 탑신부만을 건립하였다. 탑신석 각면에는 양쪽 귀퉁이에서 넓적한 우주가 두드러지게 모각되어 약간은 둔중한 느낌이 든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뚜렷하며 상면에 탑신괴임이 생략되었다. 대체적으로 각층 옥개석은 추녀와 처마가 직선이고  네 귀퉁이에 반전이 나타나며 낙수면도 평박한 편이다. 7층 옥개석 정상에는 1석으로 조성된 상륜부가 얹혀져 있다. 제작시기는 고려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