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헌강왕릉 정강왕릉

승학2 2019. 7. 28. 21:03

 

 

신라 헌강왕릉(新羅 憲康王陵)

사적 제187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을 모신 곳이다. 봉분 높이 약 4m, 지름 약 15m로 흙을 쌓은 원형봉토분이며, 봉분 하부에 4단의 호석(護石)을 돌렸다. 내부는 연도(羡道)가 석살의 동쪽벽에 치우쳐 있는 구조로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동서 2.7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割石)을이용하여 천장으로 갈수록 둥글게 모아지는 방식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cm, 너비 128∼96cm이다.

 

 

 

 

 

 

 

석실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屍床石)이 있다. 헌강왕은 경문왕(景文王)의 태자로서 문치(文治)를 잘 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處容舞)가 만들어 졌다.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었는데 거리마다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에 왕릉 내부가 조사 되었다.-출처 안내문에서

 

 

 신라 정강왕릉(新羅 定康王陵)

사적 제186

 

 

 

 

이 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이 모셔진 곳이다. 북쪽으로는 헌강왕릉(憲康王陵)이 인접해 있다. 봉분의 높이는 약4m, 지름은 약15.5m로 둥굴게 흙을 쌓은 봉토분 이다. 봉문 아래쪽에는 호석(護石)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의 깬돌(割石)을 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床石)이 있고, 상석 앞으로는 다듬은 장방형 화광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憲康王)의 아우로 886년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1년 밖에되지 않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출처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