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하동 쌍계사

승학2 2019. 4. 3. 20:37

쌍계사(雙磎寺)

쌍계사는 지리산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하여 예부터 영산으로 승배되어 왔다. 723(신라 성덕왕 22)에 의상대사 제자인 삼법(三法)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六朝慧能)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啓示)대로 눈속에 칡꽃(萬花處)이 핀 곳에 봉안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지리산에 내려와 머물 곳을 찾던 중 범 몇 마리가 옛 삼법스님이 세운 절터로 인도하여 830년에 이곳에 대가람을 중창하고 절주위에는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심고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정강왕때 바위 사이를 흐르는 두 계곡물이 절입구에서 만나므로 쌍계사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최치원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을 쓰게하여 바위에 새겼다. 쌍계사는 도의국사와 동시대에 활약한 진감국사가 육조 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신라에 최초로 진법한 도량자이자 차의 발상지 해동범패의 연원이다. 그러므로 쌍계사는 선(). (). ()의 성지로 일컬어지며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진감선사에 의해 이루어진 금당영역과 임진왜란 이후 벽암각성스님에 의해 중수된 대웅전 영역으로 금당은 남향을  대웅전은 서향을 향하여 각을 이루는 파격적인 구도로 나타내고 있다.-출처 :쌍계사

 

 

하동 쌍계사 일주문(雙磎寺 一柱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

 

일주문은 속세(俗世)를 벗어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修道)하고 교화(敎化)하라는 뜻으로 세운 문이다. 이 문은 1641(인조 19)에 벽암(碧巖)스님이 지었다고 하며, 1977년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 었다

쌍계사 일주문은 겹치마로 이루어진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처마를 받처주는 기둥머리의 장식(包作)은 역삼각형의 거대한 모습이면서도 출목의 간격이 넓고 가늘어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넓은 지붕을 가졌음에도 받침기둥(活柱)을 하지않고 대신 기둥 전후에 보조기둥을 설치함으로써 지붕의 안전성을 유지하였다.

일주문으로서는 드물게 팔작지붕인 데다가 기둥머리 장식(栱包)의 부재가 가늘고 섬세하여 장식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양식보다는 근대적 성격의 건물이라 할 수 있다.-출처 :쌍계사

하동 쌍계사 금강문(雙磎寺 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

 

금강문은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통가하는 문이다.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모셔져 있다. 이 건물은 840(신라 문성왕 2)진감선사(眞鑑禪師)가 창건하였으며, 1641(인조 19)에 벽암(碧巖)스님에 의해, 그리고 1979년에 고산(杲山)스님에 의해 각각 중수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기둥의 장식들을 간략하게 처리(工系)하였다. 건물의 기둥이 높고 겹치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의 양 측면에는 비바람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풍판(風板)을 달았다. 3칸의 중앙을 통로로 개방하였으며, 좌우 측면의 바닥에는 지면에서 약 45cm 가량 높여서 마루를 깔았다. 현판은 벽암스님의 글씨이다.-출처 :쌍계사

 

좌측에는 언제나 부처님에게 바짝 붙어, 그를 보호하면서 비밀스런 내용을 들으려 하였다는 밀적금강(密寂金剛)을 모시고 있고, 우측에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신을 뜻하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을 모시고 있다.

 

하동 쌍계사 천왕문(雙磎寺 天王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

 

천왕문은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으로 통과하는 세 번째 문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신 전각(殿閣). 사천왕은 부차에 귀의(歸依)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사방의 수호신으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지국처왕(持國天王), 서쪽은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은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은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쌍계사 천왕문은 1740(숙종 30)에 백봉스님이 창건하였고, 1825(순조 25)1978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공포를 간략하게 처리(翼工系)하여 소박하고 단 아한 느낌을 준다. 한편 천왕문 사왕상은 목조로 조성 기법이 뛰어나 경상남도문화제 제413(20041021)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출처 :쌍계사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雙磎寺 九層石塔)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승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眞身舍利 三顆)와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二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섰다.

이 탑은 국보 제48호 월정사 팔각 구층탑과 유사한 형식으로 불기 2531(서기1987)13일 시공하여  불기 2534(서기 1990)315일에 완공하였다.발심 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 사주로 이뤄졌다.-출처 :쌍계사

하동 쌍계사 팔영루(雙磎寺 八詠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

 

팔영루(八詠樓)는 진감선사(眞鑑禪師 774~850)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이란 불교 음악을 작곡한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팔영루는 통일신라 840년에 진감선사가 세웠고, 1509(중종 4)중섬선사가 팔영루를 중수하고, 어득강(魚得江)에게 글을 부탁하니 서문과 팔영을 찬양하는 8수의 한시를 지어 놓았다. 이후 1641(인조 19) 벽암각성선사(碧巖覺性禪師)에 의해 쌍계사가 중창될 때 쌍계사 대웅전과 함께 중건 되었다.

1979년에 고산(杲山)스님에 의해 새로 중수하였다. 정면 5, 측면 3, 2층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을 봉안하지 않은 곳이어서 공포를 배치하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겹처마로 구성되었으며, 단청은 화려하다. 팔영루는 통일 신라시대에 진감선사가 처음 세운 뒤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 범패을 배출한 교육장소로서 의미가 크다. 또 범패의 명인을 교육시켰던 교육장이었다고도 전한다.-출처 : 쌍계사

 

 

하동 쌍계사 청학루(雙磎寺 靑鶴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

 

고려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건물은 1930년에 쌍계사 주지 손민선사가 중수하였고, 1985년에 지붕을 한차례 고쳤다. 청학루는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거대한 자연석 주춧돌에 둥글고 굵은 기둥을 세워 마루를 얹고, 옆 모양이 자 같은 맞배지붕을 얹었다. 이 누각은 쌍계사에서는 처음 스님이 되시는 분들의 수도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_출처 : 쌍계사

 

하동 쌍계사 팔상전(雙磎寺 八相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8개 장면으로 압축하여 표현한 그림 八相圖이나 각을 모셔두는 건물이다. 이 전각은 1290(고려 충렬왕 16)에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창건한 이래 여러 차례 중수(重修)되었으며  1978년에 다시 한번 중수되었다.

팔상전은 쌍계사 대웅전의 영역이 아닌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영역에 속해있다.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의 건물로 조선후기 다포계 팔작집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둥이 높고 사이의 간격이 넓어 대웅전과 같은 웅장함을 보여준다. 내부의 기둥머리에 장식을 많이하고 그것이 사면에서 안으로 피어오르도록 구성함으로써 내부 공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천장은 중앙을 향해 차차 올라가는 층단을 둔 우물천장으로, 내부 공간의 시야를 넓게 터준다. 불단(佛壇)위에 걸린 그림(幀圖)은 보물 제925호로 지정된 靈山會相圖이다._출처 : 쌍계사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전(雙磎寺 六祖頂相塔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

 

쌍계사의 창건설화와 관계가 있는 전각으로 중국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선사(慧能禪師)의 머리()를 모섰다고 전한다. 처음 신라 민애왕(閔哀王)연간에 진감선사(眞鑑禪師)가 건물을 세워 육조영당(祖影堂)이라 한다. 일명 금(金堂)이라고도 한다. 육조정상탑전은 정면 3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팔작지붕 건이다. 건물의 받침(基壇)이 없이 툇마루를 두어 지면과 분리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기둥의 간격은 매우 좁고 높이는 낮으며  작은 규모의 건물임에도 기둥머리를 많이 장식하여 화려함과 품위를 유지 하였다. 또한 건물의 규모에 비해 다소 크게 구성된 장식으로 인해 건물이 장중하게 보이도록 하였. 천장은 낮지만 기둥의 장식들이 중앙으로 피어 오르도록 형상화하고, 탑의 상부에는 작은 집()을 마련함으로써 장엄한 느낌을 준다. 쌍계사 건물중 가장 균형미를 갖춘 건물이라 하겠다. 전각의 전면에 걸려있는 현판은 조선후기의 명필 추사(秋史) 정희(金正喜)의 글씨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중수(重修) 한 것이다._출처 : 쌍계사

 

전각 안에 있는 육조정상탑은 7층으로 용담선사(龍潭禪師)가 조성 했다고도 하며, 주변 목압사(木鴨寺)터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雙磎寺 大雄殿)

보물 제500호

 

722년에 신라의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옥천사를 세운 것이 기원이다. 정강왕(886~887)이 두 계곡이 만나는 절의 지형을 보고 이름을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1632년에 벽암대사 이후 여러차례 중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의 중심인인 대웅전은 부처(여래)를 모신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다포 양식으로 가운데 세칸에는 두 개의 공간포(空間包)를, 좌우 끝칸에는 한 개의 공간포를 올려 놓았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며 놓았다. 쌍계사 대웅전에는 내부에 3개소의 불단이 마련되었는데  삼세불좌상과 사보살입상을 봉안한 주불단과 영가단, 신중당으로 나뉜다. 주불단 상부에는 닫집이 구성되었느데  짧은 기둥 사이에 창방을 얹은 후 다포계의 공포대를 형성하였고  추녀 및 사래를 걸어 겹치마를 구성하였다. 이 대웅전은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와 미술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쌍계사 진감선사 탑비(雙磎寺 眞鑑禪師 塔碑)

국보 제47호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신라말의 명승 진감선사(眞鑑禪師)혜소(慧昭)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塔碑)이다. 선사의 속성은 최씨로 애장왕 5년(804)에 당으로 들어가 신감대사(신감대사) 아래에서 계를 받았고  각지를 편력한 뒤 흥덕왕 5년(830)에 신라로 돌아와 역대의 왕에게 숭앙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옥천사(玉泉寺)에서 입적하셨다. 헌강왕은 885년에 진감선사대공령탑(眞鑑禪師大空靈塔)이라 추시하여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고  정강왕(886∼887)은 옥천사를 쌍계사(雙磎寺)로 이름을 고쳤다. 이비석은 진성여왕 1년(887)에 건립되었다.

고운 최치원(崔致遠 : 857∼?)이 글을 짓고 썼는데 그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꼽힌다. 전체 높이는 363㎝  비선의 높이는 213㎝  너비는 약1m  두께는 22.5㎝이다_출처 : 쌍계사

하동 쌍계사 석등(雙磎寺 石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

 

대웅전 앞에 서있는 석등은 절안의 어둠을 밝힐 뿐만아니라,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춤으로써 중생(衆生)을 깨우쳐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쌍계사 석등은 등불을 놓는 화사석(火舍石)이나 지붕돌(屋蓋石)과 같은 중요한 부분이 없어서 원형을 알기 어렵다. 위 받침돌(上蓋石)은 여덟 폭의 연꽃부리가 위로 향하도록(八葉單瓣仰蓮) 조각하였으나  아래 받침돌(下蓋石)은 반대로 꽃부리를 아래로 향하여 서로 대칭을 이루게 하였다. 받침돌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된 반면, 석등의 중앙부 기둥은 가늘고 길며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졌다. 원래의 형태는 알기 어렵지만  받침돌에 새겨진 치밀한 연꽃무늬와 중앙 기둥의 단조로운 처리 등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_출처 : 쌍계사

하동 쌍계사 명부전(雙磎寺 冥府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명부전은 지옥의 중생을 구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사후(死後) 세계에서 자신이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영혼이 가야할 길을 심판한다는 명부(冥府) 10대 제왕(十大諸王)모셔져 있다. 이 건물은 1687년(숙종 13)에 성안대사(成安大師)가 창건하였고  1710년(숙종 36)에 시민대사(新民大師)가 보수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머리의 장식(包作)을 간략하게 처리 하여(翼工系)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의 기단은 1단으로 낮게 하였는데  대웅전과의 위계를 고려한 듯하다.  기둥머리 장식 부재가 비교적 작고 연꽃무늬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조선 후기의 수법으로 보인다._출처:쌍계사

 

하동 쌍계사 마애불(雙磎寺 磨崖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자료 제48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모습의 마애불이다. 큰바위에 두터운 돋을 새김으로 불상을 새기고  불상의 둘레를 깊이 파내. 감실(龕室)에 모셔진 부처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머리가 크고 살집이 많은 얼굴에 어깨까지 쳐진 귀는 자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부처의 손은 법의(法衣)로 덮여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라기보다는 승려의 모습과 같은 마애불이다.-출처:쌍계사

 

 

하동 쌍계사 금강계단(雙磎寺 금강계단 )

대은율사가 7일간 용명정진 기도중에 서상수계(瑞相受戒)하여 끊어진 해동율맥을 다시 이으신 인연터인 쌍계사에 2007년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금강계단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