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지마왕릉 및 포석정

승학2 2017. 10. 4. 17:52

신라 지마왕릉(新羅 祗摩王陵)

사적 제221

경주시 배동 30

 

이 능은 신라 제6대 지마왕(祗摩王 재위 112∼134)을 모신 곳으로 남산 서쪽 아래에 있다. 이능은 밑 둘레 38m, 높이 3.4m로 흙을 둥굴게 쌓아 올린 형태이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

 

 

 

지마왕은 파사이사금(破娑王) 아들로 성이 박씨(朴氏)다. 어머니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왕후는 김씨(金氏) 애례부인(愛禮夫人)으로 갈문왕(葛文王)마제의 딸인데 아들이 없었다.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아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왕릉 앞에 잘 다듬어 놓여있는 돌은 1955년에 설치한 것으로 영혼이 너와 놀게하기 위하여 설치한 한다는 혼유석(魂遊石)이다.

 

※.갈문왕이라는 호칭은 스스로 부른것이 아니라 6부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정해졌는데,

국왕이 즉위한 뒤 책봉의 형식으로임명하는 경우도 있었다.-다음백과

 

  

 

경주 포석정지(慶州 鮑石亭址)

사적 제1

경주시 배동 454-3번지   

 

 

 

 

 

 

포석정은 신라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배풀던 곳이다. 지금은 정자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마치 전복같이 생긴 석조 구조물만 남아있으며 화강석으로 만든 수구(水溝)의 길이는 약 22m이다.

 

 

포석정에 대한 기록은 신라 제49헌강왕(憲康王)이 신하들과 어울러 여흥을 즐길 때 남산의 신이 왕 앞에서 춤을 추자  왕도따라 추게되어 이로부터 “어무산신 (御舞山神舞)”라는 신라춤 만들어졌다고 전해준다.

 

경애왕(景哀王) 4(927)이 후백제 견훤(甄萱) 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그 자취가 이처럼 잘 남아있는 것은 매우 더문 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수 있는 장소이다.-출처: 안내문에서.